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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절벽위 사찰의 위용 … 쇼군 저택 … 천년고도의 향기 고스란히

778년 세운 기요미즈데라 '결단' 부르는 명소로 인기

지혜·연애·장수 상징하는 세갈래 물줄기 오토와 폭포

노벨상 배출한 '철학의 길' 기온 거리 게이샤도 볼거리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기요미즈데라 전경. 본당은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목조건물로 이곳에 서면 교토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겨울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눈꽃이 남아 있다.

오토와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기요미즈데라에 와서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세 갈래 폭포수가 됐다. 각각 지혜·연애·장수를 상징하는 폭포수를 사람들이 마시고 있다.

니조성의 내부 모습.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토 내 거처로 세워졌다.

일본 교토를 가기 위해서는 오사카를 거쳐야 한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내려 자동차나 전철 편으로 한 시간가량 이동하면 교토시내에 다다른다. 시내는 생각만큼 그렇게 넓지가 않다. 차로 이동하면 20~30분 안에 시내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다만 유적지가 시내뿐만 아니라 교외에도 산재해 있어 찾아다니려면 조금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정도다. 교토는 언제와도 예쁘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서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가을은 단풍이 아름답게 반긴다. 여름은 여름대로, 눈 쌓인 겨울은 겨울대로 자태를 자랑한다. 2월의 멋은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내륙지방이어서 산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지만 햇빛이 비치는 시내는 다소 더울 정도다. 벚꽃이 피기 전 한가롭게 여행할 수 있고 또 날씨도 최적이다.

일본에서의 교토의 지위는 한국의 경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794년 일본의 수도가 된 후 1868년 메이지유신과 함께 도쿄로 천도할 때까지 1,000여년 동안 일본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그 사이 도쿠가와막부 등 군부정권에 의해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일왕이 상주하는 수도로서의 위상은 천년 동안 변함없었다. 또 최근까지 수도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유적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교토를 폭격대상에서 빼줘 전쟁의 참상까지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온전한 교토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시내 동쪽에 있는 오토와산 중턱에 위치한 기요미즈데라(淸水寺). 교토가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인 778년에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하니 굉장히 유서 깊은 사찰이다. 물론 몇번의 화재로 소실돼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1630년대에 재건된 것이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기요미즈데라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물이 본당과 본당 앞 무대다. 절벽에 반쯤 걸쳐져 있는데 건물 전체에 걸쳐서 못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대의 난간에 서면 교토시내가 보인다. 처음에는 건물뿐이었다가 참배객들이 많이 몰리면서 무대를 확장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과감히 결단하는 것에 대해 '기요미즈데라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로'라는 표현을 쓴다. 정말 무대의 난간에 서면 높게 여겨진다. 사찰 측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이 무대에서 뛰어내린 사례가 1694년부터 1864년까지 234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사망률도 15%나 됐다. 지금은 정부에서 엄격히 금지하면서 이런 사례는 없다고 한다. 기요미즈데라에서 또 유명한 곳은 폭포수다. 본당 오른쪽에 오토와 폭포가 흐르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3개의 물줄기가 돼 연못으로 떨어진다. 3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연애·장수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만약 욕심을 부려 3개를 모두 마시면 또 불운이 닥친다고 하니 재미있다.

기요미즈데라를 나와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철학의 길(哲學の道)'이라는 곳이 나온다. 긴카쿠지(銀閣寺)와 난젠지(南禪寺)를 잇는 좁은 길인데 교토대 교수였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을 하며 걷던 길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쓰모토 히로시 교토대 총장이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한 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많은 학자들이 '철학의 길'을 산책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고 한다. 특별한 것은 없다. 작은 운하를 따라 약 2㎞ 길이 이어지는데 그냥 평범한 길 같다. 하지만 걷다 보면 졸졸거리는 물소리와 다양한 나무들,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들려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한다. 종종 나타나는 길고양이들까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철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동양 전통사회에는 없었다. 근대에 서양문물이 전래되면서 영어 '필로소피(philosophy)'에 대응하는 말로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물론 '철(哲)'이라는 말은 있었다. 선비가 갖춰야 할 교양으로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할 때 '철'은 경전, 대부분은 유교경전과 도덕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이런 전통용어인 '철'이 근대 이후 서양문물과 접하면서 '철학'과 '종교'로 구분돼 지금 사용되고 있다.



교토에서는 건물 전체가 금칠이 돼 있다고 해서 긴카쿠지(金閣寺)라고 불리는 로쿠온지(鹿苑寺)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시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 지은 별장이었으나 그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로쿠온지라는 사찰로 바뀌었다. 지금의 건물은 1950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55년 재건된 것이다. 긴카쿠지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극우파 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가 1950년 화재사건을 소재로 1956년 소설 '긴카쿠지'를 쓰면서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긴카쿠지의 매력에 사로잡힌 한 젊은 학승(學僧)이 있었는데 그는 또한 말더듬이라는 선천적인 장애로 고뇌하던 중이었다. 주인공은 생의 의지를 회복하기 위해 아름다움의 상징인 긴카쿠지에 불을 지른다." 절대미와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청년의 소외의식을 다룬 역작으로 이 작품이 일본에서 히트를 치면서 긴카쿠지의 이름은 전화위복의 계기를 얻었다.

교토에 있는 세계 유산급 유적 중 유일하게 절이나 신사가 아닌 것으로 니조성(二條城)이 있다. 일왕 다음가는 권력자였던 쇼군의 저택인 셈인데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교토에서 머물 거처로 지은 성이다. 당시 외부의 눈을 의식해야 했던 관계로 외관은 소박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그 화려함에 깜짝 놀란다. 성의 중심에 있는 쇼군의 숙소를 니노마루고덴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걸을 때마다 꾀꼬리 소리가 나서 '꾀꼬리 마루'라는 바닥이 있다. 암살을 두려워한 집 주인이 적이 야간에 침입할 경우 알아차리기 쉽도록 이런 소리를 내게 했다고 한다.

일본이라고 하면 이색 풍경으로 게이샤(藝者)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평시에 게이샤를 실제 만날 수 있는 것이 교토의 기온(祗園)이라는 지역이다. 기온에는 수백년간 여성예술로서 게이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게이샤 복장으로 거리도 활보한다. 할리우드 영화 '게이샤의 추억'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서양인들에게는 특히나 신기한 동양문화로 인식된 모양이다. 참고로 교토에서는 게이샤가 아니라 게이코(藝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교토=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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