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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에 오면직 선생

호국인물에 최용남 소장

오면직 선생

최용남 소장

친일세력 처단과 독립운동 자금 확보를 위해 의열투쟁을 전개한 오면직 선생과 6·25전쟁 당시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백두산함'의 함장 최용남 소장이 각각 '12월의 독립운동가'와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오 선생은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양산학교와 평양 대성중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지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활동을 지원했다.

1922년 스승인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국노병회에 가입한 후 한국노병회 파견원 신분으로 중국 허난성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1931년에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 및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 모의에 참여했고 1933년 아리요시 아키라 주중일본공사 암살을 시도했으며 1934년에는 비밀 결사대인 한국독립군특무대에서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 1936년 한국맹혈단을 조직해 친일파 처단 및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제에 체포돼 1938년 사형이 집행됐다.



전쟁기념관이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최 소장은 평안남도 용성군 출신으로 1946년 해군 참위로 임관했다. 1950년 4월 제2함대 PC함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6·25전쟁 중 부산 해역으로 침투하던 북한 무장수송선(1000톤급·무장병력 600여명 탑승)을 발견하고 당시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인 백두산함 함장으로서 적함을 추격해 격침했다.

별다른 사격 연습과 교전 경험도 없이 야간과 악천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당시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1953년부터는 해병 학교장으로 부임해 해병양성에 힘썼고 이후 해병대사령부에서 작전국장, 참모부장 겸 군수국장,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5년 해병 소장으로 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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