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골프매거진] 가깝지만 먼 이웃이 일본이라면 '멀지만 가까운 이웃'이 바로 미국 로스엔젤레스(LA)다. 미국에는 대략 200만 명의 우리 교포가 거주한다. 이중 60여만 명이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그 절반인 30만 명 가량이 LA에서 생활한다. LA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다. 첫 해외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1978년 당시 삼성농구단을 관리하고 있을 때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 차 방문했던 곳이다. 2주 동안 머물렀는데, 한국인들이 많아 영어 한마디 쓰지 않고도 아무런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어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면 지금처럼 늦공부에 시달리지 않았을 거라는 회한도 든다. 회원이 아니면 물건도 못사 LA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골프로도 유명한 곳이다. 세계 100대 코스 가운데 7개가 자리한다. LA 컨트리클럽(47위)을 비롯해 사이프러스포인트(2위), 페블비치(5위), 샌프란시스코(23위), 리비에라(29위), 올림픽(45위), 스파이글라스힐(85위)이 포진해 있다. 2004년 6월 미국 명 코스 탐방길에 찾은 LA CC는 부촌으로 이름난 비버리힐스 윌셔 블루버드에 위치한다. 땅값이 워낙 비싼 지역이라 골프장 부동산 가치만 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정통 프라이빗 클럽을 표방한다. 까다로운 회원가입 조건과 운영 탓에 웬만한 골퍼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다. 이 방문은 월드클럽챔피언십(WCC)에 참가했던 존 오도넬과 댄 제닝스 두 회원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철저한 회원 위주의 클럽 운영을 상징하는 일화 하나. 기념품이라도 살겸 우리 일행은 프로숍에 들렀다. 이것 저것 골라 계산대에 가니 웬걸, 회원이 아니면 계산 자체가 안 된다는 게 아닌가? 낭패였다. 할 수 없이 초청자인 회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점원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혹시 2004년 WCC 대회 때 시타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골프채널에서 본 적이 있다며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전세계아마추어 골프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니 판매를 허락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역만리에서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WCC의 위상과 긍지를 느꼈음은 물론이다. LA CC의 역사는 간단치 않다. 1897년 피코의 알바로도 지역 6만5,000㎡에 달하는 빈 공터를 임대해 9개 홀을 조성하고 윈드밀 링크스라 불렀다. 1898년 중반에는 로즈데일 공동묘지 뒤쪽의 컨벤트 링크스로 클럽하우스를 옮기면서 9홀을 다시 조성하기 시작했다. 1899년 봄 이곳이 혼잡해지자 이듬해 클럽의 창시자인 조 사토리와 에드 터프트로 구성된 코스탐사위원회가 기존 컨벤트 코스에서 서쪽으로 0.32km에 위치한 피코 웨스턴의 북동쪽 코너에 클럽하우스를 이전하면서 18홀을 완성했다. 이것이 지금의 북(North) 코스다. 1911년에는 비버리힐스에 다시 18홀을 조성해 남(South) 코스가 탄생했다. 1996년과 97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의 36홀 규모로 자리잡았다. 핸디캡 3이하 회원 75명 남 코스는 파70, 북 코스는 파71이며 세계 100대 코스에 랭크된 북코스의 총 길이는 6,895야드에 달한다. 코스레이팅도 74로 높은 편이다. 골프장 안에는 회원들이 소유한 6개의 아파트도 있다. 발코니에서 첫 홀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원만이 소유할 권한을 가지는 이곳에는 3대째가 사는 회원 가족도 있다. 13번홀 그린 주변 페어웨이 오른편의 홈비힐스에는 플레이보이의 창시자인 휴 헤프너가 살고 있기도 하다. 워낙 시끌벅적한 파티가 자주 열리는지라 골프장측에서 울타리와 방음시설을 설치해놨을 정도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호기심에 울타리를 기웃거린다.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1926년부터 1940년 사이에 아마추어 대회인 로스엔젤레스오픈을 5차례 개최했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1984년 US오픈 개최 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클럽이사회 투표 결과 찬성 4표, 반대 4표가 나왔고 캐스팅보트를 쥔 의장이 "No!"를 선언하면서 결국 대회 개최가 무산됐다. PGA 투어 대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US오픈이라는 최고의 메이저대회를 개최하면 클럽 홍보효과도 상당할텐데 왜 거부했을까? 역시 보수적인 클럽운영 때문일 것이다. 홈페이지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회원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특별히 알릴 내용도 없고 알릴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유태인이 설립한 LA CC는 회원가입 조건이 그 어느 곳보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유색인종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연예인, 심지어 쇼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이들도 회원이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 회원도 없는 것으로 안다. 파인밸리, 오거스타내셔널과 더불어 한국인들이 라운드를 경험하기가 특히 어려운 곳이다. 700여명의 회원 중 핸디캡 3이하가 75명이나 된다. 프레드 커플스 등 쟁쟁한 멤버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이곳의 회원이었다. 회원을 위한 프라이빗 클럽 오후 5시가 지나 저녁식사를 위해 룸에 입장하는 회원이라면 클럽 재킷을 의무적으로 입어야 한다. 프라이빗 클럽다운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플레이를 할 때 여성은 스커트만 입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공교롭게도 코스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다. 코스 안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하는 것이다. 오로지 회원만이 결제가 가능해 돈이 오갈 필요도 없다. 회원이 사인한 명세서가 한 달에 한 번 청구되는 식이다. 이사회(보드) 멤버, 즉 카운실 멤버 밑에는 토너먼트, 소셜(Social), 회원 가입 및 양수양도 등 분야별로 커미티 멤버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프라이빗 클럽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회원에 의한, 회원을 위한, 회원의 골프장'이라 할 만하다. 필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해슬리나인브릿지의 지향점도 이와 일치한다. 그래서 전세계 유명 프라이빗 클럽의 운영시스템을 꼼꼼히 살펴왔다. 구상중인 내용의 일부는 이렇다. 우선 아침 저녁으로 클럽기를 올리고 내릴 계획이다. 이 때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음악이 흘러나온다. 저녁이 되면 회원들 모두 클럽재킷을 입는다. 재킷은 이탈리아에 제작을 의뢰한 상태다. 휴대폰도 그늘집에서만 이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첫 홀 티샷은 의무적으로 회원이 제일 먼저 하도록 정했다. 회원으로서 자긍심도 느낄 수 있고 동반자들을 배려하려는 목적에서다. 이런 노력 하나하나가 쌓이다 보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정통 프라이빗 클럽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정통 프라이빗 클럽의 자존심을 꿋꿋이 지켜가는 LA CC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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