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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책임한 시·군 통합 타령


대통령 소속기관인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지방행정체제 개편 기본계획'을 확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36개 시ㆍ군ㆍ자치구를 통합하고 서울과 6개 광역시의 자치구를 폐지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위원회는 개편의 필요성으로 규모의 경제와 역량 강화를 통한 효율성ㆍ경쟁력 제고, 주민 편의와 복리 증진을 들었다.

위원회가 통합 대상으로 선정한 곳은 통합 건의가 있었던 14개 시ㆍ군(의정부ㆍ양주ㆍ동두천, 안양ㆍ군포, 전주ㆍ완주, 구미ㆍ칠곡, 통영ㆍ고성, 동해ㆍ삼척ㆍ태백), 통합 건의는 없었지만 도청 이전 지역(홍성ㆍ예산, 안동ㆍ예천), 새만금권(군산ㆍ김제ㆍ부안), 광양만권(여수ㆍ순천ㆍ광양) 등 2개 이상의 시ㆍ군에 걸친 대규모 사업이 진행 중인 곳, 인구나 면적이 과소한 자치구(서울 중구ㆍ종로구, 부산 중구ㆍ동구와 수영구ㆍ연제구, 대구 중구ㆍ남구, 인천 중구ㆍ동구) 등이다.

무리하게 추진하면 심각한 부작용

문제는 개편 의도가 좋다고 개편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역대 정부와 현 정부는 시ㆍ군 통합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밀어붙였지만 의도했던 결과는 나타나지 않고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정 규모에 대해서는 합의된 기준이 없다. 인구 2,000~3,000명이 적정하다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10만명이 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규모가 클수록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다면 인구가 몇 백~몇 천명에 불과한 선진국의 지자체보다 이미 10~100배 큰 우리 지자체가 훨씬 앞서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1960년대에 1,592개 읍ㆍ면을 140개 군으로 통합했고 1994~1997년 온갖 무리를 하며 80여개 지자체를 통합했다. 하지만 의도한 것처럼 효율성이 높아지고 지역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통합으로 인한 정체감 상실, 약소 지역 공동화, 문화ㆍ역사의 상실, 지역 간 갈등과 대립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무리하게 통합을 강행한 창원 지역에서는 지방의회가 다시 분리하자고 의결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위원회는 서울과 6개 광역시의 자치구(기초의회)를 폐지하되 구청장ㆍ군수를 선출하거나 임명(광역시)하는 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자치구를 폐지하면 제주도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 명백하다. 정부는 온갖 지역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선전, 주민투표를 통해 2005년 무리하게 제주도의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역 거점 상실로 인한 지역 발전 저해, 행정의 과도한 집중, 지역 간 격차 증대 등 부작용이 심각해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선 기초단체 부활 움직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와 주민 복리를 희생양으로 삼아 '한 건 했다'는 정치인과 관료의 실적을 위해 시ㆍ군 통합과 자치구 폐지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 아무런 실익도 없이 지방자치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지역사회를 주민 간 찬반 의견 대립으로 극단적 갈등에 빠뜨리는 시ㆍ군 통합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관료와 정치인의 개인적인 실적 쌓기를 위해 전국민을 볼모로 삼는 통합 타령은 이제라도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더구나 정권 말기에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다. 차제에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시ㆍ군 통합, 자치구 폐지와 같은 정책은 추진하지 않고 막아내겠다는 공약을 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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