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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아티스트 양성… 문화·예술에 나눔을 담았다

[토요 Watch] 오너들의 예술 사랑 뮤지엄으로 꽃피다<br>호암·리움·금호·성곡·서울미술관 등 60여곳<br>문화유산 지키고 민족 자부심 고취에도 한몫<br>SNS 등 대중과 함께하는 서비스 개발해야


4일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서울미술관은 이중섭 화백의 '황소'를 비롯해 박수근ㆍ장욱진ㆍ천경자 등 근대 거장의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관람하러 오면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그룹의 리움 다음으로 큰 사립미술관인 서울미술관은 흥선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 석파정과 법인 석파문화원을 수년 전 65억원에 인수, 지난해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3,000억원에 달하는 성공 신화를 일군 안 회장은 이중섭의 그림만 30여점 모은 컬렉터다.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를 만나면서부터. 1983년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명동의 한 액자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던 그는 이중섭의 '황소'를 인쇄한 그림을 보고 가게에 들어가 복제 프린트 그림을 샀다. 그리고 아내에게 선물로 주면서 "언젠가 진짜 황소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미술관 설립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지는 오너의 예술 사랑=기업인의 예술 사랑은 비단 안 회장의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1982년에 문을 연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골동품 수천 점이 모태가 됐다. 1982년 4월 호암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한 이 회장은 "그동안 열의를 가지고 문화재를 수집한 것은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또 "미술관에 전시된 문화재와 미술품은 그 하나하나의 작품 속에 깊숙이 간직돼 있는 미술성과 역사의 향기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은 이후 1999년 서울 태평로에 로댕갤러리(2011년 '플라토'라는 이름으로 재개관)를, 2004년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을 잇따라 설립했다. 특히 국내 최대의 사립미술관인 리움은 2004년 10월19일 문을 연 후 약 113만명이 찾았다. 이 회장이 모은 유물을 포함해 2~3세들이 수집한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데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유물이 전체 국보의 10%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업 오너가 설립한 미술관은 오너의 예술적 취향은 물론 예술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금호미술관은 음악ㆍ미술 등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었던 고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989년 종로구 관훈동에 설립했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둘째 딸인 박강자 관장이 지금까지 25여년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1996년에는 미술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른 종로구 사간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성곡미술관은 쌍용그룹 창업자인 고 성곡 김성곤 회장이 문화 예술의 시대에 걸맞은 예술 인재 양성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1995년 설립했다. '내일의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이용백ㆍ전준호 등 50여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김영헌ㆍ박화영ㆍ손정은ㆍ이재효 작가 등 중견 작가들의 개인전을 선보이면서 지금까지 160만여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컬렉터다. 젊은 시절부터 화랑가를 돌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구입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2003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마련된 스페이스C는 그가 40여년간 수집한 국내외 근현대 회화 및 조각 작품 1,200여점이 모태가 됐다.

이 밖에도 대림미술관, 아트선재센터(대우), 아트센터나비(SK), 포스코미술관, 일주&선화갤러리(태광), 한미사진미술관, 일우스페이스(한진), 63스카이아트미술관, OCI미술관 등 기업 오너들이 세운 미술관은 다양한 기획 전시와 아티스트 양성을 통해 미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사립미술관은 2006년 70개에서 2011년 110개로 늘어났다. 서울아트가이드에 등재된 미술관 및 화랑을 기준으로 집계하면 기업에서 운영 중인 전시 공간은 전국적으로 60곳이 넘는다.

◇미술관 운영, 이제는 전문가에게 맡겨야=기업 오너 혹은 CEO의 의지에 힘입어 미술관이 설립됐더라도 운영 과정에서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해 문을 닫거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곳도 더러 있다. 지난해 말에는 16년 동안 한국야쿠르트 서울 잠원동 사옥 내 문화공간으로 운영되던 우덕갤러리가 문을 닫았다. 1996년 4월 사옥을 마련한 야쿠르트는 이듬해 창업주 윤덕병 회장의 호 '우덕'에서 이름을 딴 갤러리를 개관했었다. 연간 10여차례 이상 꾸준히 전시했지만 관람객이 현격히 줄면서 문을 닫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미술관은 지속적으로 작가를 관리하고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데 오너가 바뀐 후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면 예산 배정에서 후 순위로 밀리고 기본운영 인력마저 유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미술관이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미술계와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트렌드에 맞는 전시를 내놓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달진 한국미술정보센터 관장은 "처음에는 좋은 취지를 내걸고 출발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미술관 본연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미술계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트렌드를 발 빠르게 읽고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 사모님의 안방 노릇을 하던 미술관의 운영도 기업 경영처럼 전문가에게 맡겨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업이 미술관을 설립하면 오너의 친인척이 관장을 맡아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탈세 등 각종 의혹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미술관 설립은 기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운영은 전문가 집단이 맡으면서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기업체로 수익을 내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최 교수는 "본연의 업무인 전시뿐 아니라 고객들의 편의를 높인 도슨트프로그램, 혹은 고객이 직접 미술관에 방문하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미술관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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