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사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쇼크 자체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지만 문제는 한국시장에 몰아칠 후폭풍”이라며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거품이 걷히고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일어나면서 우리 금융시장이 강도 높은 2차 여진에 시달리게 될 것이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증시 상승폭이 컸던 한국시장은 이익실현을 위한 주식 현금화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일어날 시장이라는 것이다. 다만 금융시장 패닉이 실물경제를 끌어내릴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어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해 4.5% 정도의 경제성장률 달성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몰아친 신용경색 위기와 2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이질적인 양대 현안을 진단하기에 김 원장만한 적임자도 없을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민간경제연구기관이자 재계에서 가장 활발한 대북 경협활동을 벌이는 현대그룹 계열사의 기관장으로서 김 원장은 경제와 정치의 양대 이슈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확고한 견해를 밝혔다. 최근 글로벌 경제를 뒤흔드는 신용경색 리스크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를 전세계 금융기관들이 지금까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들이 신용경색에 대비해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는 것 같지만 부실규모가 판단되고 환매가 줄어들기까지 앞으로 2~3개월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처럼 선진국보다 리스크가 크고 단기간에 과도하게 오른 시장은 그만큼 이익실현이 쉽기 때문에 헤지펀드들의 주식 현금화에서 우선순위에 놓인다. 외국인 순매도가 집중되고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시장상황이 유독 나빠서라기보다 이익실현을 하기 좋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 시장에 닥쳐올지 모를 후폭풍이다. 우리나라는 서브프라임의 직접적 영향에는 크게 노출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세계 자산시장의 거품이 조정되면 상대적으로 강한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또 동남아 지역 중심의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과정에서 증시 경색이 경기와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는 2차 여진을 겪을 우려도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하는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는 1,700억달러지만 일반적으로는 5,000억달러에서 많게는 1조달러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엔캐리 자금의 상당 부분이 선진시장에 투자되고 있는데다 일본 금리가 아직 상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청산 후 일본으로 회수될 트레이드 자금은 전체의 30%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본다. 때문에 엔캐리가 대거 청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지난 1997년 당시에는 시장 대처능력이 떨어진 일부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선진국들이 훨씬 빠르게 위기에 대처해 패닉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1차적인 시장의 패닉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으므로 10년 전과 같은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환율 폭등이 국내 기업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사실 3개월, 6개월, 또는 1년 뒤의 네고 물량을 계약해야 하는 기업들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관성’이다. 반면 기업에 리스크의 본질은 ‘변동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율의 널뛰기는 가장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의 엔화 강세가 일본 경제여건 호조에 의한 현상이라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엔캐리 자금 청산 때문에 일시적으로 환율이 오르고 있을 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2~3개월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외환시장 움직임에 대응하기 매우 힘들어진 것이다. 당장은 국내 기업이 수출단가 하락으로 득을 보는 것 같지만 변동성 리스크가 높아지면 경기 및 소비 위축이 야기될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악재라고 봐야 한다. 아직은 금융 패닉이 소비나 투자 등 실물경제로 비화되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의 시장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실물경제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에는 영향이 없다는 얘기인가. ▦아직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을 조정해야 할 정도의 영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해 국내 경제는 연평균 4.5% 정도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수출이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투자도 예상 외로 좋다. 우려되는 부분은 고용사정이 좋지 않아 소비가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수출과 투자는 추가 상승 여력이 없을 만큼 호조를 보여 하반기 경기는 사실상 소비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경기가 회복 중이라지만 4.5%라는 성장률은 여전히 우리의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고용과 소비 회복을 느끼려면 성장률이 적어도 5%는 넘어야 한다. -성장률 5% 달성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성장동력 산업을 찾아야 한다. 지난 10~15년간 정보기술(IT) 산업을 찾아낸 것처럼 새 성장산업을 찾아 육성해야 한다. 기존 주력산업 중에는 중국이나 인도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산업이 생길 것이다. 빈 부분을 메울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서비스 산업 육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제조업 부가가치 제고 없이 서비스 산업만으로는 경제가 한 단계 올라설 수 없다. 인구증가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노령ㆍ여성 인구 활용과 국내 독자기술 확보가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일단 세계 10대 경제국 진입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4.5%의 성장으로는 안 된다. 인도ㆍ러시아ㆍ중국이 워낙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선진국들도 그만큼 앞서가기 때문에 우리가 선진10개국(G10)에 들어가려면 성장속도를 한층 높여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 경제가 다 성장한 줄 알고 분배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G10’ 진입이 요원해진다. -최근 급진전된 남북화해가 한국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배낭을 메고 뛰려면 힘들긴 하다. 하지만 한참 동안 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필요한 물품들을 담은 배낭이 있어야 한다. 남북 경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북한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남북한이 힘을 합치면 언젠가 그 힘을 발휘할 날이 온다. 과정이 힘들고 우리의 부담이 늘어나도 그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북한 경제의 홀로서기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소득 2만달러를 달성할 정도로 적당히 뛰는 데는 발목을 잡혀도 됐지만 G10에 들어가는 ‘선수’가 되려면 걸림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소득 1,000달러 미만의 동족을 옆에 두고 우리가 2만달러 이상으로 올라서기는 어렵다. 북한 경제가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1인당 소득을 3,000달러 정도까지는 끌어올리도록 도와줘야 한다. 남북협력 없이는 G10이라는 우리의 목표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우리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북경협 측면지원 현대그룹 싱크탱크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986년 10월 창립된 현대그룹의 싱크탱크로 35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포함한 120명의 인력과 100억원 규모의 자본금을 갖추고 있다. 거시경제와 산업 및 기업연구, 비즈니스 컨설팅에 더해 1998년에는 현대인재개발원을 통합, 기업부설 연구소로는 유일하게 인재교육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 다른 연구소와 가장 차별화된 분야는 현대그룹의 대북경협 사업을 측면 지원하는 동북아연구센터다. 1994년 설립된 통일경제센터를 확장, 남북 경협과 한반도 경제공동체, 동북아시대 전략 등에 관한 실질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고받는 남북경협 위해선 시간 더 필요"
아직은 북핵등 걸림돌 제거 우선순위…정상회담이 경협 활성화 시작점 될것 "오는 10월2일 연기됐지만 2차 남북 정상회담은 경협 활성화를 위한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지금까지도 말로는 남북경협을 해 왔지만, 정치외교ㆍ군사적인 문제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고, 개성공단도 그 때문에 위기를 겪은 바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 평화체제 전환과 개성공단의 국제경쟁력 제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대북 경협에 관한 한 누구 못지않게 경험도, 사연도 많은 현대그룹의 싱크탱크를 이끄는 김 원장은 북한과의 인연도 깊다.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서 열린 개성공단 투자설명회에서 브리핑을 맡았고 지금까지 방북만 해도 10여 차례에 달한다. 그만큼 북한 사회와 경제를 직접 경험하고 이해해 온 김 원장은 "아직은 남북간 대등한 논의나 거래를 추구하기보다 북한의 경제상황과 국제적 위치, 북핵 문제 등을 감안해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기 위한 걸림돌 제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 전문가들이 앞으로의 경협이 '퍼주기식' 지원보다는 '주고받는' 상생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당분간 투명한 절차를 거쳐 북한이 개방체제로 나오도록 기반을 조성하는데 주력한다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통상과 통신, 이중과세 문제 등 기업활동 여건이 갖춰져 개성공단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구역으로 탈바꿈하기 전에는 기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김 원장은 조언했다. "북한 사회 자체가 사업성을 기준으로 기업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북한측과 사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산업, 개성공단 등 현대그룹이 총대를 맨 일련의 대북 사업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은 만큼 김 원장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1차 회담 결과가 금강산과 개성공단 개방의 계기가 됐다면, 2차 회담에서는 개성을 중국 선천처럼 국제경쟁력을 갖춘 공단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처럼 의례적이고 소극적인 경협 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활성화하고 제도를 풀기로 합의한다면 매우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1인당 소득은 800달러선. 한국의 소득은 25배에 달하는 2만달러 수준. 두 체제가 합쳐질 경우 한국 경제의 부담은 불 보듯 뻔하지만, 김 원장은 당장의 부담보다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공동체 개념으로 봤을 때 남북한은 7,000만 인구에 1인당 소득 1만3,000달러의 경제가 되는데, 세계에서 그 정도 소득을 올리는 국가도 많지 않다"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북한의 인프라가 워낙 열악하지만 계획을 잘 세워 적기 투자가 이뤄진다면 북한 사회가 탈바꿈하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원장은 "한국 경제도 7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다"며 "한국인의 기본적인 부지런함과 총명함이 발휘된다면 북한 경제의 홀로서기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력 ▦1952년 울산 ▦경복고 ㆍ서강대 영어영문학과 ▦미 아이오와 주립대 경영학석사ㆍ박사 ▦87년 미 애리조나주립대 강사 ▦88년 미 파이낸셜리서치 저널 부편집위원 ▦89년 고려종합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92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영본부장 ▦2004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이사 원장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자문위원 및 남북경협위원회 위원, 한국전자거래협회 이사, 글로벌 인재포럼 자문위원, 전국경제인연합회 교육발전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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