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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영웅과 꼴통의 변주곡…트랜지스터 혁명





1947년 12월23일, 미국 벨사 실험실. 연구진과 참관인들이 숨을 죽였다. 크기가 진공관의 220분의 1에 불과한 게르마늄 조각은 전기신호를 제대로 증폭시켰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전산업에서 컴퓨터, 반도체, 통신에 이르기까지 전자혁명을 일으킨 ‘트랜지스터’가 첫선을 보인 순간이다.

전송(transfer)과 저항(resist)의 합성어인 트랜지스터는 막강한 성능을 뽐냈다. 진공관과 달리 예열할 필요도, 쉽게 가열되는 문제도 없었다. 쉽게 터지지도 않았다. 전기료 역시 적게 들었다. 수많은 진공관으로 이뤄진 초기 컴퓨터 에니악을 작동하려면 필라델피아시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던 시대였으니 트랜지스터의 발명에 개발진과 제작사는 흥분에 떨었다.

트랜지스터 발명의 주역인 윌리엄 쇼클리와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독일도 1928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초소형 ‘마법의 돌’인 트랜지스터의 첫 상용 제품은 보청기. 핵심 이론을 제공한 쇼클리가 강조한 대로 ‘증폭’의 첫 대상으로 보청기를 삼았다.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도 뛰어났던 쇼클리의 ‘증폭’에 대한 설명. “당나귀 꼬리에 성냥을 그어봐라. 성냥을 켜는데 소모한 에너지와 꼬리에 불이 붙은 당나귀가 뛰는 힘의 차이가 바로 증폭이다.”

미국은 트랜지스터가 지닌 증폭의 힘을 군수용 및 관용 컴퓨터 제작에 써먹었다. 1958년 가을 트랜지스터를 갖춘 IBM 7000 시리즈는 상업용 데이터 처리 부문의 신기원을 열었다. 미국 국세청은 이 컴퓨터를 이용해 고액 세금 체납자들을 적발해냈다.

미국이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고도 쉽게 상용화하지 못하던 기간 중 개발의 주역인 쇼클리도 다른 길을 걸었다. 벨사에 요구했던 특별대우가 거부되자 그는 1956년 고향인 캘리포니아에 돌아와 쇼클리연구소를 차렸다. 실리콘밸리가 형성된게 이때부터다. 연구소에 최고 인재 12명을 불러들였지만 경영자로서 그는 낙제였다. 연구원들의 지능을 검사하고 경쟁을 부추긴다며 벽에 봉급일람표를 붙였다. 결국 기행을 못 견딘 핵심 연구원 8명이 독립해 ‘페어차일드반도체’를 세웠다. 인텔과 AMD가 여기서 갈라져 나온 회사다.

최고의 과학자였지만 최악의 경영자(CEO)였던 그는 사업 실패 후 우생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IQ 100 이하인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거침없이 뱉어냈다. 1989년 79세로 사망했을 때는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라는 평판이 업적과 명성을 가렸다. 과학에만 매진했다면 ‘인류를 반도체 세상으로 이끈 모세’로 각인될만한 영웅이었으나 ‘꼴통’이라는 인식을 남긴 그와 비슷한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일본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대형 양조업체 집안에서 태어나 인생을 편하게 즐길 수 있던 그는 25세를 맞은 1946년 라디오 조립업에 뛰어들었다. ‘도쿄통신공업’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조립과 수리로 시작한 그는 1953년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자본금 1억엔 짜리 회사가 9,000만엔을 들여 트랜지스터 면허 생산권을 사들인 것. 미국인들은 그를 비웃었다. 예상대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진공관에 비해 음질이 떨어졌다.



모리타의 선택은 휴대용 라디오. 건전지로 작동되는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수출물량이 연간 4만대로 시작해 500만대까지 늘었다. 주문이 쏟아져 특별전세기가 수시로 수출품을 실어 날랐다. 서구인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박혀 있던 ‘일본인=트랜지스터 세일즈맨’이라는 인식이 이때 자리잡았다. 모리타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고유 상표. 주문자 상표(OEM)를 달자는 대형 바이어들의 유혹에 고민하던 그가 1958년 선택한 ‘SONY’라는 고유 상표는 세계에 퍼지고 회사 이름까지 대신했다.

모리타식 발상의 전환은 1979년 선보인 ‘워크맨’으로도 이어지고 소니의 ‘경단박소(經短薄小)’ 전략은 세계적 트렌드로 퍼졌다. 모리타는 내부경영에서도 학력과 학벌을 파괴하는 등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승승장구로 초심을 잃었을까, 아니면 구 일본 해군 중위 시절 익힌 침략 근성이 새어나왔기 때문이었을까. 나이 50세를 넘겨 스키와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할 만큼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60대 이후 극우 보수로 돌아갔다.

‘한국의 성장은 식민지배 덕’이라는 망언을 내뱉던 국수주의 성향을 공동 집필한 책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 그대로 드러낸 1991년이 인생의 정점. 1993년 뇌졸중으로 은퇴해 1999년, 78세로 죽었다. 후손들은 탈세로 망신을 샀다. 소니도 비슷하다. 예전의 명성은 게임기기와 카메라에 남은 정도다.

트랜지스터가 진화한 반도체의 쓰임새는 갈수록 늘어나고 갈수록 가격도 떨어져만 간다.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 대규모 집적회로를 거쳐 반도체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 시기를 통틀어 인하된 가격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오늘날 롤스로이스의 가격이 10달러 남짓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의 발전 속도는 쇼클리가 세운 연구소에 뛰쳐나와 인텔을 설립한 고든 무어의 예상(반도체의 능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다.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마다 2배씩 늘어나며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비(非)PC 부문이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황의 법칙(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마저 무색할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다. 경쟁도 그만큼 심해졌다. 본격적인 디지털 경쟁은 이제부터다. 전 세계는 나노 트랜지스터 등 신반도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나간 역사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하고 응용한 주역들을 기억한다. 미국 LA타임즈는 뉴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발표한 ‘20세기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50인’에서 윌리엄 쇼클리를 1위로, 모리타를 25위로 손꼽았다. 21세기 말에 기록될 미래의 역사는 누구를, 어떤 나라를 혁신의 주인공으로 꼽을까. 부디 디지털 전쟁의 영웅이 이 땅에서 꿈을 펼치기를….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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