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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불타는 갑판 위에 선 대통령의 선택


지난 1988년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근처 북해 유전에서 석유 시추선이 폭발했다.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앤디 모칸은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어떻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까. 잠결에 들린 요란한 폭발음에 갑판으로 뛰어나온 모칸이 몸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갑판 곳곳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바다는 배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이미 불바다였다. 갑판에서 수면까지는 50m가 넘는 높이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컸다. 잠시 망설이던 모칸은 불꽃이 일렁이는 차가운 북해로 몸을 던졌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 불타는 갑판에서 확실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을 선택해 목숨을 건졌다.(구본형 저,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재인용)

모칸의 사례를 인용한 것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불타는 갑판'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칸은 불타는 갑판에서 뛰어내린 결단 덕분에 하나뿐인 목숨을 건졌다. 배에 남아 있던 나머지 168명은 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국가도, 조직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경제 정책을 총괄할 마무리 투수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을 선택했다. 청와대는 "전문가적 식견과 현역 의원을 지내며 쌓은 정무적 역량을 바탕으로 4대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추진해나갈 적임자"라고 밝혔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유 후보자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보면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분은 맞다. 하지만 그가 적임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전임자에 비해 떨어지는 중량감' '사람은 좋지만 부족한 추진력' '공격형보다는 관리에 적합한 수비형' 등의 공통된 평가가 나온다. 유 후보자는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세간의 평가를 그대로 확인시켰다. 후보자로의 첫 일성이 "전임 경제팀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내정 직후 "경제 주체들이 무기력하다, 정책 기조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겠다"며 강력한 경기 부양 드라이브 의지를 밝혔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유 후보자 자신만의 정책 의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벌써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이 안종범 경제수석으로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경제는 최 부총리가 내정됐던 17개월 전보다 더 심각하다. 구원투수(소방수)로 불린 최 부총리도 갑판의 불을 끄지 못했다. 가계부채라는 불기둥은 오히려 더 커졌다. 곳곳에서 불기둥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최 부총리를 내리고 마무리 투수로 관리형인 유 후보자를 올렸다. 경제보다는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더 중요해서일까. 경기의 승패는 마무리에 달려 있다. 선발투수와 구원투수가 아무리 경기를 잘 이끌어도 마무리 투수가 날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무리 투수 선택 못지않게 교체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다. 철벽 마무리 없이 한두 경기를 이길 수는 있어도 우승은 결코 하기 어렵다. 전임 대통령이 그랬듯이 박 대통령도 결국 퇴임 후에는 경제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독인 박 대통령의 선택이 최선일지, 최악일지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끝까지 지켜볼 도리밖에 없을 것 같다.

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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