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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번째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로 햇수를 셈하는 방식을 전 세계가 따르고 있기 때문이죠.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고대 사회가 선물 경제(Gift economy)였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이웃과 나누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이 표시되는 사회였다는 것이죠. 사람들 간에 선물을 주고받으면 모종의 책임감이 생깁니다. 나중에도 그와 비슷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더 나은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반복적이면서도 선의의 관계가 누적되면 서로 ‘상호호혜적 관계’(Reciprocal relationship)를 맺게 된다고 사회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선물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효용이 큰 선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시간이 지날수록 비싼 요리를 시켜주는 경우와 가격 순위에 관계 없이 요리를 시키는 상황, 그리고 점점 싼 요리를 시키는 경우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누적적으로 화폐효용이 커지는 주문 방식이 얻어먹는 사람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서 ‘누적적으로 편익이 커지는 것’이 선물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불측성입니다. 선물의 규모와 정도를 미리 가늠하게 되면 이후에 받는 사람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치 않은 선물을 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상대방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느끼는 결핍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의 일상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잠재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역대 대통령들은 조금 전형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선물을 제공해 왔습니다. 바로 성탄절 특사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거나, 죄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해 풀려날 수 있는 사람들을 크리스마스와 함께 풀어주거나 사면하는 것이 큰 선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영어의 몸에 있던 사람들이 보통 사람과 함께 숨 쉬고 다닐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는 것은 자유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 특사의 대상이 점점 경제사범에 해당하는 기업인이나 수뢰죄로 감옥에 갇힌 정치인 등으로 집중되면서 그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갔습니다. 더이상 국민들에게 선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만족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효용을 주는 가치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선물을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 퍼주기 식으로 이득을 제공하는 의식이 된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상상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고, 두 동생과 친족들을 희생정신과 따뜻한 가슴으로 품었던 박 대통령입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의미의 혈족에서 더 나아가 국민들을 가족으로 하고 커다란 마음으로 안아야 하는 지도자입니다. ‘국민 행복’이라는 슬로건 속에는 이 나라의 최고경영자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들의 잠재적인 욕구까지 헤아릴 줄 안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지도자 스스로 행복해 져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대통령이 비운의 여주인공, 비상시의 엄격한 최고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두에게 긴장을 주었다면, 그것을 완화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한 것입니다.
선물을 줄 수 있는 지도자의 마음은 여유에서 시작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비선 논란에서 시작해 최근 있었던 박 대통령 주변의 이슈 대부분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더 많이 치중한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 청와대의 거버넌스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갔느냐, 그리고 가장 많이 정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진정한 정보의 흐름과 거버넌스의 구조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해명하기 급급한데 국민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여유야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과는 다른 획기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와 여유가 있습니다. 지나온 시대가 거시적인 발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일상에 대한 관심을 통해 미시적인 정책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았던 선물, 또는 행복과 관련된 이야기도 조금씩 나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대한민국에 선물 다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께도 크리스마스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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