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팔릴까.’
서른 한 살의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여느 때보다 초조하게 새 소설의 판매 결과를 기다렸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필명을 얻으며 가난에서도 벗어났지만 장기간의 미국 여행으로 돈이 고갈된 상황. 만삭의 아내는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별거하기 전까지 디킨스 부부는 결혼 생활 18년 동안 7남 3녀를 낳았다. 별거 이유는 디킨스의 바람기. 처제와도 염문이 있었다.)
다시금 채무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갇혀 한 달여 만에 급하게 써낸 80쪽 분량의 소설 제목은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 1843년 크리스마스 이브 직전에 나온 이 소설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일주일 만에 초판 인쇄가 동났다. 구두쇠 ‘스크루지’의 회개가 담긴 이 소설은 시간적·지리적 공간을 넘어 성탄 시즌이면 연극이며 TV를 통해 연례행사처럼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탄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히트에 고무된 디킨스는 크리스마스에 푹 빠졌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이듬해인 1844년 ‘종소리’에 이어 1847년 ‘유령에 시달리는 사나이’까지 해마다 한 권씩 ‘크리스마스 시리즈’를 내놓았다. 디킨스의 성탄 시리즈 소설은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상류층에 대한 비판과 서민들의 애환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검약과 나눔의 정신도 강조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종소리’에는 특히 경제학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빠져 소외된 계층을 외면하는 경제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낭독회에서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시리즈물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읽어나간 소설도 ‘종소리’라고 전해진다. 낭독회에서 디킨스가 애송했던 또 다른 소설 ‘하드 타임스(Hard Times·힘든 나날:1854)’ 역시 장시간 노동과 아동 고용에 따라 황폐해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면서도 디킨스는 희망을 전파하려 애썼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디킨스는 구두쇠 스크루지의 심리 변화를 통해 ‘회개와 희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검약도 강조했다.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소득 20파운드에 지출이 19파운드 6센트면 행복하고 지출 20파운드 6센트면 불행하다.’
당시 20파운드의 요즘 가치는 우리 돈으로 약 3,700만원(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디킨스의 수입은 상상 이상이다. 남북전쟁 직후에 두 번째 방문한 미국 전역에서 낭독회를 열었던 디킨스가 5개월간 올린 수입이 1만 9,000 파운드. 가족과 함께 런던에 머물며 대영제국 도서관에 파묻혀 살던 칼 마르크스가 원고료와 친구인 엥겔스의 후원금을 합쳐 연간 150~200 파운드의 수입으로 중류층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던 시절, 디킨스는 재벌처럼 돈을 벌었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미국 낭독회에서도 단골 메뉴였다.
디킨스는 부자로 죽었지만 그 유산은 오래가지 못했다. 디킨스가 국제무역상으로 키우고자 했던 큰 아들 찰스 디킨스 2세는 중국과 일본 무역에서 실패해 유산을 날렸다. 디킨스 2세는 17파운드의 유산만 남겼을 뿐이다. 자선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던 생전의 디킨스가 아들의 사업 실패를 예견했었다면 보다 많은 재산을 사회에 돌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디킨스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 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출간 165주년. 어김없이 성탄절이 찾아왔건만 과연 ‘하늘에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충만할까. 거리에 울리는 캐럴 속에 디킨스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전하려던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다. ‘나 홀로 가지려는 자, 마음을 바꿔라. 없어도 포기하지 마라. 암울한 현실에도 희망이 있나니….’/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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