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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1일 오전9시30분 무렵 일본 도쿄의 신주쿠 다카시마야 백화점 출입구 앞에는 몇몇 쇼핑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10분쯤 지나자 줄은 금세 40여명으로 늘었다. 벽면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한 일본계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출시한 3만~4만엔대의 여성용 핸드백을 구입하기 위한 추첨권을 나눠주는 대기 줄이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 오전부터 누가 가방을 사러 아침부터 줄을 서 있나 싶어 자세히 보니 대부분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백화점 경비원은 "매일같이 영업시간 시작 30분쯤 전부터 관광객들이 평균 40~50명 정도 줄을 선다"고 설명했다.
연말을 맞은 도쿄 거리와 매장들에는 곳곳마다 외국인이 넘쳐난다. 신주쿠의 고급 백화점인 이세탄 백화점의 1층 귀금속 매장에서도, 가전제품 양판점 매장에서도, 화장품과 의약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드러그스토어에서도 점심시간도 되기 전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한다. 도쿄의 대표적인 쇼핑가인 긴자에는 매일같이 중국인 쇼핑객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다. 불과 3년 전까지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급격한 변화의 배경이 된 것은 달러당 120엔대에서 정착된 엔화 가치 약세다. 그리고 그 뒤에는 3년 전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가 있다.
'디플레이션 탈출'과 '강한 일본의 부활'을 내걸었던 아베 신조 정권 출범이 26일로 만 3년을 맞는다. 경기를 부양하고 산업경쟁력을 높여서 '잃어버린 20년'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아베노믹스'는 침체돼 있던 일본 경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정권 출범 전 달러당 70엔대까지 치솟았던 엔화 가치는 아베 정권이 2013년부터 실행한 대대적 양적완화에 힘입어 달러당 120엔대로 떨어졌다. 그 결과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영실적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주가는 지난 3년 사이 85%나 치솟았다. 기업들의 갑작스러운 실적 호조로 이제는 일자리를 찾는 것보다 일손을 구하는 일이 어렵게 됐다. 현재 일본의 구직자 대비 구인비율을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은 1.24배에 달한다. 구직자 한 명당 1.24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아베 정권이 당초 오는 2020년 목표로 삼았던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돌파는 당장 내년으로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이 일본에서 쓰고 가는 돈은 지난해 2조엔에서 올해는 1~9월에만 2조6,000억엔을 기록, 연간 3조엔 돌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전기밥솥부터 의약품·과자류까지 매장의 물건을 싹쓸이하다시피 대량 구매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바쿠가이(爆買)'라는 신조어는 올해의 유행어 대상으로 꼽히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내수를 견인하기 시작하면서 거리에는 수 년 전에는 볼 수 없던 활기가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한꺼풀 들춰본 일본 경제의 속 사정과 아베노믹스가 여전히 '절반의 성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기업들의 대규모 흑자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매우 완만한 오름폭을 보이는 데 그치면서 가계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정권 출범 직전인 2012년 4·4분기 이래 3년 동안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불과 2.3%, 연 평균으로는 0.76%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아베노믹스의 이면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의 약속대로 2017년 4월 소비세율이 현재의 8%에서 10%로 추가 인상될 경우 일본 경제는 다시 한 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아베노믹스에 환호하던 일본인들도 3년이 지나면서 슬슬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도쿄의 한 택시 운전사는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기대감에 다들 붕 뜬 느낌이 있었지만 실제로 경기가 좋아졌다고 체감되지는 않는다"며 "그나마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중국 경기가 둔화된다는 마당에 언제까지 계속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실제로 중국인들의 '바쿠가이'도 몇 달 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쿄=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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