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회동을 가졌다. 앞서 지난 28일 유럽 방문을 마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푸틴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외교적 해결을 요청한 데 이은 후속조치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안정시키는 데 국제사회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러시아 군대가 철수하고 우크라이나 영토보전·주권을 침해하는 조치를 더 이상 취하지 않아야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양 정상은 후속논의를 위해 30일 외무장관 회담을 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이 같은 논의 전개는 국제사회의 거듭된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나 홀로 행보를 보여온 푸틴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양 정상 간 대화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접수와 이에 따른 서구권의 대러 제재조치가 나온 후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의 제의가 냉전 종식 이후 서구권·러시아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대결국면을 풀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로의) 새로운 군 병력 투입을 앞둔 핑계인지 의문이 남는다"며 "양국 장관 회담은 이 의문들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이 비록 외교적 해법마련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이것이 사태해결의 호재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로의 추가 진입을 위한 명분 쌓기인지 여부는 WSJ의 분석처럼 아직 분명하지 않다. 라브로프 장관은 29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크렘린은 우크라이나 지역에 군대를 보낼 의사도, 관심도 없다"면서도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민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크림반도 합병 당시 때도 이와 유사한 논리를 구사한 러시아로서는 친러 성향이 짙은 동부 지역에서의 소요 사태 등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여전히 열어둔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 이번 사태가 처음 촉발된 후 양국 외무장관은 지금껏 수차례 공식·비공개 접촉을 가졌다. 그동안 케리 장관은 러시아 측에 △우크라이나 경제 안정을 위한 공동 방안 마련 △우크라이나 정치 분권화 추진 △친러·친우크라이나 준군사조직의 해산 등을 제안했다고 익명의 미 당국자는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개별 지역의 자치권을 보다 강화하는 연방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체가 단일 국가로서 친서방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29일 인터뷰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본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솔직히 말해 '연방제'를 제외하고는 우크라이나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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