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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까치밥과 시루떡-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가의 감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매달려 서너 개 남겨진 홍시를 부지런히 쪼아대는 모습을 보니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의 거짓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고향에는 예나 지금이나 감나무가 많다. 과수원을 하는 집이 아니라도 집집마다 아름드리 감나무가 한두 그루는 있었다. 그래서 논과 밭 그리고 바다의 일손이 덜어질 때쯤 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장대 하나씩 들고 감을 따기 바빴다. 감 따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무겁고도 긴 대나무를 이리저리 돌려야 하는지라 몇 번이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내 툭툭 털고 다시 달려들었다. 겨우내 입을 호강시켜줄 주전부리가 생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감 따기를 할 때면 이해 못할 말을 했다. 여남은 개가 남으면 그만하라는 것이다. 남김없이 모두 따면 내년에 감이 열리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리 높지 않은 곳에 매달려 있던 감이 너무 아깝기만 했다. 어머니의 참뜻은 한참 후에나 알았다.

그즈음 어머니는 시루떡을 만들었다. 가을걷이가 끝나 풍족해진 곳간에서 쌀이며 팥이며 여러 가지 곡식을 내와 부지런히 씻고 빻았다. 부뚜막에 떡시루가 오르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면 군침이 저절로 돌았다. 이때도 어머니는 이해 못할 말을 했다. 큼지막하게 떼어낸 시루떡을 널따란 접시에 담아 형제들을 모두 불러 세워놓으시고는 동네 이집저집에 가져다주라는 것이다. 한나절 넘게 떡을 기다렸는데 이웃집에 먼저 준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어머니의 참뜻도 한참 후에나 알았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내어주기를 그렇게 가르치셨다. 감나무에 여남은 개를 남기도록 해 힘든 겨우살이를 하게 되는 동물들을 위한 배려를 가르치셨다. 자식들에게 시루떡을 전하게 해 이웃과의 훈훈한 정을 가르치셨다. 자식들을 꾸짖거나 매를 들지 않는 대신 일상생활에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교육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르침을 필자만 받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그렇게 이웃과 함께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기를 바랐다.

우리 민족의 이웃사랑은 예로부터 유별났다. 이웃사촌이라 해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왔다. 피를 나눈 형제나 친지보다도 더 가깝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지탱하게 한 주춧돌이었다.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이웃 간에 다툼이 생기고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다.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까치밥을 남기게 하고 시루떡을 나누게 한 우리네 부모님들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내어줄 줄 아는 미덕을 배우도록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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