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피해 올라간 나무, 그 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나무에 숨어든 두 남자의 갈등을 통해 전쟁과 평화, 본능과 신념, 개인과 국가 등 답내기 어려운 묵직한 주제를 그려낸다.
‘연극열전 6’의 개막작 ‘나무 위의 군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에 올라가 2년 동안 지낸 두 일본 군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고(故) 이노우에 히사시가 생전 완성하지 못한 희곡을 호라이 류타가 완성시켜 일본에서 2013년 초연했다.
신념과 권위를 중시하는 분대장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한 어리바리 신병.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점차 변해간다. 적의 식량을 주워 연명하느니 죽겠다던 분대장은 어느새 적의 음식과 담배에 취해 긴장감을 잃고 무뎌진다. 순박했던 신병은 자신과 섬을 구원해주리라 믿었던 분대장의 변화에 분노한다. 도피처 삼아 숨어들었던 나무 위가 또 다른 전쟁터가 되는 순간이다.
2인극의 단조로움을 보완하는 것은 스토리텔러인 ‘나무의 정령’이다. 정령은 극의 여러 마디에서 해설자로 등장해 두 군인의 심리를 설명하고, 때론 두 남자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분한다. 해설자의 개입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배우 강애심의 음색은 몽환적인 캐릭터의 색깔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노우에 히사시의 미완 희곡에는 없던 인물로, 호라이 류타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삶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로 추가한 캐릭터다.
‘2년 전 전쟁이 끝났다’는 쪽지를 발견한 어느 날. 나무 아래로 내려갈지 말지를 두고 논쟁하던 두 사람은 서로가 숨겨왔던 진실을 토해내고, 이내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전쟁’과 마주한다.
자신의 신념을 키워가는 신병과 한 때 신병같았지만 점차 현실에 안주하며 변해가는, 그래서 자신의 민낯을 모두 지켜본 신병에게 살의를 느끼는 분대장. 공연 내내 두 사람이 부닥치는 이 사회의 수많은 ‘나무 위’가 떠오른다.
“너도 나도 이 섬도 적국에 바쳐진 거라고. 그런데 슬프지 않아 이 국가는. 넌 그래도 믿을 거야?” 국가·인간·전쟁 등 두 사람의 대화에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화두는 솔직히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캐릭터 설정과 적절히 녹아든 유머, 무엇보다 ‘전시’(戰時)만 아닐 뿐 지금 이 시대와 맞닿은 갈등·고민이 관객과 작품의 거리를 좁혀준다. 어렵지만 또 보고 싶은 묘한 작품이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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