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연정(大聯政) 성격의 국가미래전략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여야 대연정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독일의 연정 성공 사례도 들었다. 물론 권력을 분점하는 내각참여형 대연정은 아니다. 황 대표 말마따나 협치(協治)를 바탕으로 한 정책 연대다.
△황 대표의 대연정 발언은 2005년 정국을 달군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재·보궐 선거 후 여소야대로 바뀐 2005년 정치 지형은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는 지금과 사실상 판박이다. 여당 단독으로 어떠한 법안 처리도 불가능하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국가적 미래과제 논의는 언감생심이다. 2005년 노 대통령의 연정 짝사랑은 집요했다. 야당에서 "꿍꿍이가 뭐냐"며 저의부터 의심하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처음엔 권력을 반쯤 떼준다더니 급기야 통째 이양 발언까지 나왔다. 클라이맥스는 9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민생을 걱정하시니 국정을 한나라당이 맡아달라는 거다."(노 대통령) "그런 식의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박 대표) "합당하자는 게 아니다. 내각을 함께 만들자는 거다."(노 대통령) "그런 말씀 거둬달라. 오늘로 연정을 더 이상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가겠다."(박 대표) 양측 대변인이 합동 브리핑에서 전한 발언록이다. 두 사람은 2시간30분 동안 할 말을 다 했지만 실은 하고 싶은 말만 했을 따름이다.
△황 대표의 제안에 야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05년 데자뷔다. 중요한 정치 제안, 그것도 '밀당'의 협상이 수반된다면 일방 통보가 아닌 물밑 조율이 우선이다. 그래서 미국 의회는 수용하지 않을 제안을 불쑥 내놓는 것은 파트너 무시 행위로 간주한다. 배려와 소통이 상생 정치의 요체다. 노 대통령은 사후 출간한 회고록에서 대연정 제안을 두고 국민의 생각이 자신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며 '뼈아픈 실책'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앞으로 몇 번이나 정권이 교체돼야 역지사지의 정치가 실현될까.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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