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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신도시, 건설 아닌 재생에 눈 돌릴 때


기자가 결혼을 하면서 처음 보금자리를 틀었던 곳은 분당이었다. 아파트가 아닌 4층짜리 다가구주택의 1층이었지만 그래도 '분당'이라는 이름 하나로 어쨌거나 주변에는 그럴싸하게 먹히는 결혼 출발이었다. 2년의 전세살이를 끝내고 인근의 주공아파트에 입주한 기자는 이후 도심 출퇴근이 멀다는 이유로 일산으로 둥지를 옮겨 몇 년을 더 살다가 지난 2001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신도시를 떠났다. 당시 일산을 떠나는 기자의 마음 속에서는 '살기 좋은 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컸다.

출퇴근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것 빼고는 별 불만이 없었던 신도시 생활이었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분당과 일산의 현실을 바라보는 기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기자가 살 때만 해도 신도시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늘 '살고 싶은 거주지'상위권에 꼽혔다. 하지만 입주 20년이 지난 신도시는 '신(新)'자가 어울리지 않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주변에 크고 작은 택지개발이 잇따르면서 주말이면 도로가 차로 꽉 막히기 일쑤다.

값이 떨어진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인데 상대적으로 훨씬 쾌적한 신도시가 주변에 속속 둥지를 트니 넘쳐나는 공급에 견뎌낼 재간이 없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주변 주거지와의 상대적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신도시 자체적으로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첫 입주가 1992년이니 어느덧 지은 지 20년이다. 겉은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아파트가 시설 노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실제로 신도시 주민들이 겪는 불편은 서울시내 노후 재건축 추진단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부 마감재야 그렇다 치고 배관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가 하면 단지 내 엘리베이터 수리 등 건물 수선 명목으로 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대부분 아파트 시설 노후화로 몸살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아파트가 유독 많은 보수비용이 드는 것은 건설 당시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신도시를 짓는 과정에서 자재ㆍ인력난을 겪다 보니 노후화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도시 건설 직후 불거진 '해사(海沙ㆍ바닷모래)'파동으로 한동안 신도시 주민들이 부실 시공 걱정에 떨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가 이처럼 노후화 문제를 겪고 있는 1기 신도시 재생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모델링 규제 완화 요구가 잇따르자 일부 규정을 손질하긴 했지만 여전히 개별 아파트 리모델링은 제자리걸음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재건축과 달리 별다른 수익원도 없다 보니 많게는 주민들로서는 수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재생 문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스탠스는 '주민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 같다. 하지만 신도시 리모델링은 개별 주택의 개보수 차원이 아닌 도시 재생의 문제다.

땅은 한정된 자원이다. 정부가 굳이 서울에서 40㎞이상 떨어진 외곽까지 나가 대규모 2기 신도시를 조성하고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까지 풀어서 보금자리주택지구 공급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땅이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1기 신도시의 입지는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분당만 해도 서울시계에서 벗어나 조그만 고개 하나만 건너면 되는 자리다. 기반시설 역시 웬만한 서울시내보다 잘 갖춰져 있다.

기능 회복 위한 마스터플랜 만들어야

유럽은 차치하고 바로 이웃한 일본만 해도 신도시 하나 짓는 데에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투자한다. 한번 만들어지면 수십, 아니 수백년 지속되는 것이 도시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데 우리네 신도시는 계획에서 준공까지 불과 몇 년 밖에 걸리지 않은 것도 모자라 불과 20년 만에 '낡은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도시는 한번 쓰고 마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인구증가가 정체되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보다 기능을 상실한 기존 도시를 되살리는 재생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는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수치상의 공급 목표 달성이 아니다. 이는 시쳇말로 '낡은 패러다임'이다. 지금부터라도 낡은 신도시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마스터플랜이라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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