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뒤집어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지구멸망의 순간 주인공은 어렵게 구한 비행기를 타고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있는 중국 티베트에 무사히 도착한다. 최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재난영화 '2012'의 주요 스토리다. 올 한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에 이어 '2012'까지 올해 영화 흥행코드는 '재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재난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정신과 전문의들은 '극적인 체험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종민 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통제가 안 되는 재난을 대리체험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자신이 여전히 통제된 현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며 "재난영화는 겉으로는 공포영화지만 사실은 위안을 주는 위로영화"라고 분석했다. 한창수 고대 안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을 보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코티졸'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잔뜩 분비된다"며 "상황이 정리되는 결말에서는 긴장이 풀리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난 후의 심리상태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인위적인 스트레스 상황을 만든 뒤 해소되는 과정에서 쾌감과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경제위기, 인플루엔자A(H1N1ㆍ신종플루)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단순한 재난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다. 이상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전쟁 등의 사회적 위기가 일어나면 우울증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재난영화를 보면서 직장ㆍ가정 등 일상적인 문제와 스트레스 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이에 대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의 스트레스 해소 효과는 '영화치료'라는 이름으로 의료계에서 질환치료에 간혹 이용되기도 한다. 이병철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 집중하기 쉬운 공포영화나 스릴러가 좋다"며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연령이라면 더욱 공감하기가 쉽다"고 조언했다. 직장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면 '밴드오브 브라더스'나 '대부' 같은 영화가 제격이다. 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떻게 해결하고 싸워나가는지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부부 간 불화가 심하다면 '노트북'이나 '천국보다 낯선' 같은 영화를 통해 부부애와 사랑의 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영화를 선택할 때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가령 화가 날 때 공격성을 대리분출하기 위해 폭력적인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공격성을 키우는 역효과를 내게 된다. 또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유형이라면 재난영화, 스릴러, 과도한 액션영화는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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