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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에 들뜬 상하이는 화려했다. 상하이 예술특구 모간산(莫干山)로 M50 단지 내 자리잡은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19일 개막한 조각가 신미경의 개인전도 물론 그랬다. 특히 붉은 비누로 전통 도자기를 재현한 '트랜스레이션-고스트시리즈'로 채운 방은 중국인들이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부른다 하여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가득해 더욱 주목받았다. 개막식에는 작가 마류밍(馬六明), 평론가 두안쥔(段君) 등 현지 유력 미술인들이 눈에 띄었다.
최근 상하이 개관 2주년을 맞은 학고재는 신미경의 개인전을 기획하며 룽미술관 등 현지 5개 미술관과 '화장실 프로젝트'를 협업하고 있다. 비누로 불상·도자기·조각상 등을 제작하는 신미경은 '비누 불상'을 화장실에 두고 관람객이 사용하게 한 다음 다시 전시장으로 옮겨놔 '예술품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상하이 미술계에서 남다른 관심을 받고 있는 학고재는 중국의 미술전문지 '예술재경'이 '중국에서 가장 교훈적인 전시'로 지난해 9~11월 연 백남준 기획전을 선정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학고재를 제외한 2~5위는 중국 내 다른 미술관이었다. 올 초 중국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학고재가 선보인 '단색화전'에도 관객이 몰렸다. 모간산로 'M50'지구는 1930년대 제분공장과 방직공장 단지이던 곳을 상하이시가 재개발 곳으로 50여 갤러리, 20여 디자인업체, 60여 작업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학고재는 상하이 자유무역지구 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30% 안팎의 관세에서 자유로운 장점도 갖고 있다.
고군분투하며 미술한류를 이끌고 있는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중국 사기의 고사를 빌어 "남이 버리면 취하고 남이 취하면 준다(人棄我取 人取我與)는 마음으로 한국 화랑들이 더이상 눈여겨 보지 않던 상하이로 왔다"며 "현재 상하이에만 27개의 미술관이 문을 열어 소장품을 수집하는 등 미술계의 전망이 밝아 '제2 상하이 분관'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미술시장 규모는 작년 말 현재 8조원 이상으로 추산됐고, 그 중 상하이는 1조원 이상의 규모다.
한국화랑의 중국 진출이 최고조였던 것은 지난 2005~2007년 무렵. 당시 중국 미술시장의 급성장을 타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특수를 겨냥해 베이징으로 진출한 갤러리현대,아라리오,아트사이드 등 대형화랑이 주축이었다. 비슷한 시기 상하이에는 샘터,박여숙화랑 등이 분점을 열었다. 그러나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철수했고 베이징 표화랑 정도만 잔존했다. 모두가 중국을 떠나던 2013년 말, 우 대표는 "미술시장의 역사는 항상 경제중심지를 따라다닌다"며 상하이행(行)을 선언했다.
/글·사진(상하이)=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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