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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순환출자 금지, 기업 구조조정 미루는 핑계 안돼야

계열사 간 인수합병(M&A)으로 사업구조 재편을 시도한다는 삼성그룹의 전략이 난관에 봉착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SDI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판단하고 내년 3월1일까지 삼성SDI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대기업이 순환출자 고리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고리를 강화하는 것을 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의 첫 적용 대상에 걸린 셈이다. 삼성이 매각시한 연기를 요청했지만 법 규정에 관련 내용이 없는 만큼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정위의 결정으로 신(新)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이른 시일 내 3세 승계와 새로운 사업구도를 마무리하려던 삼성의 당초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안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실 계열사 구조조정, 사업구조 재편과 3세 승계 같은 문제는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이 안고 있는 당면 과제다. 다른 대기업들이 삼성에 대해 공정위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상당 기간 치밀한 내부 검토를 거쳐 '신 삼성물산'이라는 묘책을 마련한 삼성조차 결국 공정위의 순환출자 규제라는 그물망을 피하지 못했다. 다른 기업들로서는 내부 문제도 해결하고 공정위의 규제도 피할 수 있는 제3의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기업구조 개편에 대한 고민까지 가세했으니 기업들의 주름이 더 깊어지게 생겼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결정이 대기업들의 구조·사업 재편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환출자 규제를 피하면서 기업구조 개편과 후계구도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사안이 대기업들의 부실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늦추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 부실 계열사 정리는 수렁에 빠지기 직전의 모기업을 살리는 길이며 우리 경제를 갉아먹는 좀 벌레를 척결하는 작업이다. 여우 피하려고 호랑이를 만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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