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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 60년]<2부-2> 세상과 세상을 잇는다

"難공사능력세계최고" 해외서도 '고속道신화'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삼성건설의 싱가포르 칼랑 파야 르바 간선도로 현장. 기존 도로와 하천 밑으로 지하도로를 뚫어야 하는데 주변에 고층 빌딩과 주택이 밀집해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천 밑으로 건설되는 지하 간선도로의 단면도. 삼성건설은 하천을 옆으로 옮기고 굴착해 도로 구조물을 넣은 뒤 다시 하천을 원위치시키는 ‘오픈컷(open cut)’ 공법을 썼다.


지난 65년 11월1일은 한국 건설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현대건설이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처음 해외 건설의 씨앗을 뿌린 날이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흐른 2007년에도 ‘고속도로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단순 도로건설쯤이야 코웃음을 칠 정도로 건설역량이 성장했고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공사에 밀려 도로공사는 뒷전으로 처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전인미답’을 개척하는 21세기형 고속도로 신화도 역시 한국 기업들의 몫이다. 6월 말 싱가포르 도심 외곽의 ‘칼랑 파야 르바’ 간선도로 현장. 다양한 피부색의 근로자들이 푸른색 ‘삼성(SAMSUNG)’ 로고가 선명한 안전모와 조끼를 착용한 채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공정률이 약 93%에 달해 대장정의 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칼랑 파야 르바는 싱가포르의 남부ㆍ북부ㆍ내륙 등 3대 도시고속도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연장 12㎞, 왕복 6차선의 간선도로다. 이중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맡은 현장은 3공구의 3㎞ 정도. 고작 3㎞의 도로를 건설할 뿐인데도 공사비는 무려 2억3,680만달러(약 2,180억원)나 받는다. 단 1m를 건설하는 데 7,400만여원씩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처럼 공사비가 비싼 것은 이 도로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난(難)공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칼랑 파야 르바는 12㎞ 중 9㎞ 구간이 땅 밑으로 뚫리는 지하도로다. 그중 2㎞ 정도의 구간에는 지상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폭 40m에 달하는 강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그 밑으로 6차선 도로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기존 도로와 하천 옆으로는 고층 빌딩, 아파트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공사를 벌일 만한 공간조차 별로 없다. 가장 가까운 빌딩이 굴착현장에서 불과 3m 옆이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구간 아래로는 새로운 지하철 노선까지 엇갈릴 예정이다. 이곳이 바로 삼성건설에 맡겨진 현장이다. 최악의 시공환경 탓에 착공 전부터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삼성건설은 일단 토질조사에 착수했다. 발주처가 이미 토질조사를 마치고 데이터를 넘겨줬지만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추가로 자체 조사에 나선 것.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곳곳의 연약지반이 발주처의 조사보다 최고 9m 이상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발주처 조사만 믿고 시공했다면 대형 붕괴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어 주변 건물 손상과 침수 사고, 지하 지장물 손상 등 숱한 위험요소에 대한 치밀한 시뮬레이션과 계측 시스템이 마련됐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비로소 굴착을 시작했다. 하천을 옆으로 옮기고 땅을 들어낸 뒤 미리 만든 터널식 도로 구조물을 집어넣고 하천을 원위치시키는 고난이도의 작업이 반복됐다. 실시간 계측기들과 아슬아슬한 씨름을 벌이며 공사를 이어가던 2004년의 4월의 어느 날. 마침내 우려하던 대형 사고가 터졌다. 일본 업체가 시공하던 다른 현장에서 굴착공사 도중 무려 100m가량 붕괴돼 인부 4명이 매몰된 것. 삼성건설의 현장과 엇비슷한 조건이었기에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 업체의 대형 사고는 삼성의 기술력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극적인 계기가 됐다. 사전에 치밀한 안전계획을 수립하고 차질 없이 실행한 삼성건설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해 8월 싱가포르의 유력 일간지 ‘더 스트레이트 타임스’에는 세계 토목계의 거물들이 삼성건설 현장을 극찬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기사 제목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KPE-one of the toughest projects in the world)’였다. 길이나 다리 등을 통해 세상을 또 다른 세상과 연결해주는 한국 건설의 기술력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숱한 난공사를 성공적으로 헤쳐온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건설이 85년 완공한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는 개통 당시 동양 최장(7,958m)의 다리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이 다리는 지금까지도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명물로 손꼽힌다. 대우건설이 6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97년 완공한 파키스탄 고속도로는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357㎞나 됐다. 물량 면에서도 대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파키스탄 경제개발의 대동맥을 건설했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린다. 삼성건설이 주도해 짓고 있는 인천대교는 영국 언론이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 프로젝트’로 꼽을 만큼 규모는 물론 동원된 첨단공법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은 인천대교ㆍ영종대교에서 보여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내세워 두바이 인공섬의 해상교량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싱가포르 토목공사 한국건설사 시대 임박" 국내 건설업체들이 진출한 지구촌 곳곳의 건설현장에는 반만년을 이어져 내려온 ‘장인정신’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자랑하는 명장(名匠) 송영한(55ㆍ사진) 상무는 일본과 유럽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건설 코리아의 장인정신을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주역 중의 주역이다. 싱가포르 칼랑 파야 르바 고속도로 현장에서 만난 송 상무의 얼굴에는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고개만 돌리면 고층 빌딩과 아파트에 가로막힌 비좁고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씨름한 지 벌써 만 5년째지만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난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싱가포르 토목공사는 일본 건설사들이 장악해왔지만 앞으로는 한국 건설의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일본 업체가 이번 고속도로 현장에서 큰 붕괴사고를 낸 반면 우리는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우리 기술력에 칭찬이 쏟아지고 있어요.” 실제 싱가포르는 물론 인도와 두바이 등 세계 각국에서 토목 관계자와 공무원들이 심심찮게 삼성건설 현장을 찾아온다. 싱가포르건설협회가 ‘베스트 프랙티스(최우수 시공사례)’로 추천하는 이곳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벌써 인도 등지에서 토목사업 참여 제안이 여러 건 들어와 있다. 송 상무가 싱가포르에 프로젝트 매니저(PM)로 부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러 악조건으로 고전하던 각국의 토목현장에는 어김없이 송 상무가 있었다. 그래서 사내에서는 그를 두고 ‘삼성건설의 소방수’라고 부른다. 지난 99년 완공한 태국 방콕의 하수처리장 공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삼성건설의 바로 옆 공구를 영국의 유명 기업인 탬스워터가 맡았는데 어려움 끝에 공정률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공사를 포기했다. “97년 사이판 근무를 마치고 본사에 복귀하기로 돼 있었는데 본부장님이 느닷없이 ‘방콕으로 가줘야겠다’고 하더군요. 도심지 공사여서 공법 선정이나 민원에 어려움이 많다고요. 군말 없이 방콕으로 날아갔지요.” 큰 손실까지 예상되던 난공사는 송 상무 부임 이후 정상궤도를 되찾아 완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방콕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준공식은 현지 TV로 한 시간 동안이나 생중계됐다. 88년 이라크를 시작으로 꼭 20년째 줄곧 해외현장만 누비는 동안 고초도 많이 겪었다. 90년 걸프전쟁의 와중에는 생사를 건 일주일 간의 탈출극 끝에 무사 귀환해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어느덧 해외현장에서 정년을 넘겨버린 그에게 삼성건설은 처음으로 ‘마스터(명장)’라는 칭호를 선사하며 보답했다. “집이 어디인지 생각은 나냐고요? 바그다드에 처음 나갈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올해 삼성전자에 입사했어요. 20년이나 자리를 비우는 동안 아내가 애를 많이 썼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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