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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개혁의 전제조건
입력2004-12-16 17:16:09
수정
2004.12.16 17:16:09
국제부 최원정기자 abc@sed.co.kr
‘중요한 건 경제야, 바보야.’
지난 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이 슬로건으로 자국 경제를 챙기지 못했던 (아버지)부시 대통령을 공격해 백악관에 입성했다. 경제 때문에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진 정치인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요즘 기업, 야당 정치인들과 대립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상황은 이 슬로건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올해 중국과 함께 성장가도를 달리던 러시아경제가 요즘 푸틴의 정치탄압으로 활력을 잃는 모습이다. 푸틴은 독재적인 정치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경제호황 덕에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 경제둔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그의 ‘KGB식’ 독재정치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현 경제정책에 불만을 표시했고 51%는 국정운영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푸틴을 비난해왔던 개혁파들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푸틴의 철권통치 아래서 제대로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급진 세력들은 최근 ‘푸틴 퇴진’을 내건 시위까지도 감행하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적 대립은 푸틴 대통령과 신흥재벌 올리가르히간의 세력싸움에서 비롯됐다. 올리가르히는 90년대 소련이 해체될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통치기반을 지지하는 대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세력이다. 푸틴은 부(富)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이들을 견제해왔고 그에 대응해 올리가르히는 푸틴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정치인들을 지원했다. 최근 정부의 세금추징으로 파산신청까지 한 러시아 최대기업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 사장은 올리가르히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올리가르히는 천연자원의 독점, 부의 부당한 축재 등으로 장기적인 러시아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푸틴의 탄압은 러시아의 발전을 위한 개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정치의 기반을 위협하면서까지 철퇴를 휘두르는 푸틴의 개혁방식은 기업들의 투자축소, 해외투자자 이탈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둔화되면서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도 떨어지고 푸틴의 정치적 기반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공염불일 수가 있다는 것은 비단 미국이나 러시아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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