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창의성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게 우리 사회의 특징입니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농업국가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 있는 탓이지요. 빨리빨리 문화와 일사분란 증후군은 짧은 농번기에 모내기와 벼베기를 끝내는 게 몸에 배있어서랍니다. 게다가 조선의 무본억말(務本抑末) 정책은 개인의 발전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지난 6일 저녁 7시. 송파도서관 아트홀에는 삼복더위를 피해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모였다.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고전 인문 아카데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에서 처음 개설된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나라 살림살이’라는 강좌를 듣기 위해서다.
강의를 맡은 임용한 박사(KJ&M인문경영연구소 대표)는 이날 ‘농민이 천하의 근본이다’라는 주제로 우리사회에 남아있는 봉건적 사고방식의 근원을 더듬어나갔다. 임 박사는 “20세기에 우리나라만큼 빠르게 발전한 국가를 찾기 어렵다”며 “100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해 보면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과거의 사고방식을 근거로 행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오늘 그 원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국가적 가치관의 특징을 그는 세가지로 압축해 정리했다. 단순소박, 근검절약, 사회적 구분 등이다. 이는 500년간 왕조를 유지했던 비결 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게 임 박사의 주장이다.
“단순소박하다는 것은 정답이 있는 사회라는 의미이고, 근검절약이 미덕인 사회에서는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운 농업을 근본으로 유지했던 탓에 생산보다 분배에 주력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절약을 사회적 미덕으로 강조하게 되죠. 또 신분이 정해진 사회는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이겠지만,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윤을 추구하고 성장하려는 개인의 본성을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조선의 농업제도 중 하나인 공납제가 상업 발전에 걸림돌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전국의 토산품을 현물로 내야 하는 공납제는 농업을 보호하고 농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도지만, 민간에 자본이 축적되기 어렵고 기술발달을 저해하는 근본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신분이 고정돼 개인의 발전에 동기부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도한 국가의존적인 조선의 농업정책은 되레 농업의 기술발전을 가로막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게 됩니다. 실학자 박제가는 농본국가라면 농업기술이라도 최고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냐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독창성, 창의성 등 현대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필요한 가치관을 키우기 위한 대책마련에 앞서 우리의 정체부터 파악하자는 게 이번 강좌의 요지다. 그는 “지도층이 사회적인 변화를 원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됐으니 이에 적응하는 것 뿐”이라며 “미래의 국가발전을 위해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면 우리사회에 뿌리박힌 일사분란 증후군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사분란이란 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고, 다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며 “역사를 통해 우리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찾는 게 바로 역사공부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강좌는 총 4~5강으로 한 달간 진행된다. 임 박사는 송파도서관에 이어 강남도서관(10월5일), 영등포도서관(10월1일) 등에서도 강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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