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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곡선임에도 딱딱한 견고함이 느껴진다. 이토록 분명한 초록과 파랑의 순색을 자연에서 보기란 거의 불가능할 듯하다. 세상사가 이렇게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묘사의 군더더기도, 설명의 사족(巳足)도 필요없이 그저 색이 보여주는 그 울림에 한 번 잠겨보자. 별 감흥이 없다면 색을 마주한 채 상념을 버리고 자신을 가다듬어 보자.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 추상미술의 핵심 작가 중 한 명인 엘스워스 켈리(1923~2015)의 대표작인 '청-록(Blue-Green)'이다. 마크 로스코가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면 반대로 켈리는 주관성을 억제했고 그림으로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 또한 제한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1954년부터 뉴욕에 살며 작업해온 켈리는 단단한 가장자리로 화면을 구분하고 화면 안을 형태 없는 단순한 색채로 채우는 '하드에지' 화파를 이끌었다.
절제된 형태와 빛나는 색채로만 화면을 점령했던 작가, 1970~1980년대 미니멀리즘의 탄생을 이끌었던 선구자 켈리가 27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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