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관련해 중국 현지 취재를 가 느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장 현실과 규정(원칙) 간 간극이 적지 않다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실을 제어하려면 부지런히 현실과 맞부딪치며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먼저 현실이 규정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부터 보자. 규정에는 한중 FTA 발효로 모든 제품의 통관 절차가 48시간 내 끝난다고 돼 있다. 수출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식품의 경우 제품에 붙는 관세와 부가가치세인 증치세를 납부하는 통관 절차에 대략 10여일이 걸리고 이후 제품 샘플링을 거쳐 위생증이 발급되는 검역 절차에 30~35일이 또 소요된다. 그러니까 통관과 검역에 총 50여일 가까이 잡아먹힌다. 그런데 한중 FTA 발효로 평균 10여일 걸리던 통관 절차가 이틀로 간소화되니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영업 활동에 더 치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마주한 현실은 국내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떤 품목은 FTA가 발효되기 수년 전부터 이미 통관 및 검역 등 비관세 장벽을 뚫고 시장을 넓히고 있었고 또 어떤 품목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통관 및 검역에만 두 달가량 잡아먹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품목마다 비관세 장벽은 천차만별이었다. 가령 특정 항구를 통해 일괄적으로 중국에 들어오는 흰 우유는 중국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내륙에 깔릴 정도였다. 흰 우유 현지 수입상의 이른바 '관시(연줄)'가 통한 덕분에 특정 항구의 세관과 검역관들이 일단 흰 우유를 통과시키고 추후 검사를 하는 형태로 관련 절차를 대폭 줄여줬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원칙대로만 움직이는 나라였다면 유통기한이 고작 14일에 불과한 흰 우유는 중국 내륙으로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고 중국인들은 지금껏 유통기한이 수개월이나 되는 유럽산 멸균우유만 먹고 있었을 것이다.
흰 우유의 사례는 국가 간 교역이 규정대로만 움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크기의 44배나 되는 면적에 지방정부만 31개인 중국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다. 거대 국가인 중국은 중앙정부의 방침이 정해져도 성별로 일관된 시스템이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중 FTA가 지난 20일 공식 발효됐음에도 통관이나 검역 등에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품목이 들어오는 항구나 공항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가 관세 인하로 수출이 크게 늘 것이라는 '치적 홍보용' 숫자 계산에만 치중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중 FTA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비관세 장벽 현실은 여전히 FTA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진정 수출을 걱정하는 정부라면 이런 현실에 눈을 돌려 기업의 애로를 듣고 이를 해소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s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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