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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절정의 순간
입력2006-12-05 16:38:14
수정
2006.12.05 16:38:14
영화 보는 것은 어릴 적부터 나의 ‘일’이었다. 취미가 아니라-인상 깊은 영화를 꼽는다는 것은 내가 쓴 책 가운데 ‘어떤 책이 제일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몇 편의 인상 깊은 영화 속에 꼭 꼽는 영화가 있다. ‘화양연화’다.
‘화양연화’란 중국어로 인생 최고의 시기를 일컫는다고 한다. 장미가 활짝 피듯 절정의 시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현란한 시기를 말한다고 한다.
홍콩의 좁아 터진 아파트에서 그것도 세 들어 사는 두 커플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오가며 부딪히고 인사하고, 그리고 주인공인 양조위와 장만옥은 자신들의 배우자가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아는 불행한 처지에 놓인다. 동병상련 속에서 그들은 ‘화양연화’처럼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더욱 아픈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 가운데 잊지 못할 장면은 이별을 예감한 남자 주인공이 “우리 이별을 연습해보자”고 말하는 대목이다. ‘헤어지자’는 남자 주인공의 이별 연습에 여자 주인공은 너무도 가슴 아파하며 흐느낀다. 그 절절한 흐느낌은 ‘사랑의 경험자’들을 울린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사람과 떠난 여행-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공항에서 헤어짐이 너무도 가슴 아파 정작 여행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끝없이 우는 여주인공을 달래는 양조위의 프로필은 우리 인생의 서글픔, 운명이라는 흐릿한 지문에 얽매여 사는 안타까운 삶의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연습했던 이별이 다가왔을 때 그 아마추어들은 프로페셔널이 된다.
여전한 일상 속에서 장만옥은 싱가포르 특파원으로 간 양조위에게 전화를 걸고 정작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러 세대가 살던 아파트를 찾아간다. 사랑의 흔적이 있던 곳을 둘러보는 장만옥의 얼굴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 관객의 ‘화양연화’는 충족된다.
그 영화의 무대가 되는 ‘앙코르와트’를 올해 초 찾아가봤다. 과연 세계 7대 불가사의 다웠다. 나는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 찬란한 문명에 홀려버렸다. 한때 100만명이라는 인구가 모여 살았다는 이곳-그러나 오로지 신비한 사원과 꿈틀거리는 거대한 나무덩굴만을 남겼다. 사랑은 추억을 남기고 문명은 앙코르와트를 남겼다. 남녀의 사랑, 문명의 극치-더 이상 복원될 수 없는 ‘화양연화’, 절정의 순간을 남겼다. 앙코르와트를 7대 불가사의라고 일컫듯 남자와 여자의 사랑도 불가사의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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