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는 사람.’
‘노숙인’(露宿人)을 글자 그대로 풀면 이렇다. 얼핏 시처럼 들리지만 집 없이 이곳 저곳에 몸을 기대야 하는 이들의 삶은 전혀 시적이지 못하다. 요즘처럼 추위가 뼛 속을 파고드는 겨울이 오면 특히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 노숙인들은 오늘도 죽음의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고인 물’처럼 심각해지는 노숙인 사망= ‘350여명’. 매해 거리 및 자활·재활·요양 시설 등에서 사망하는 노숙인들의 숫자다. 대략 하루에 한 명 가량의 노숙인이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수치는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난 IMF 시절 이후 급증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따르면 1998년 5명에 불과했던 노숙인 사망자는 2010년 142명, 2002년 273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고, 2005년 이후부턴 ‘3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300명을 처음 넘어선 2005년 이후 한해 노숙인 사망자수는 350 여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노숙인의 사망은 입구는 있는데 출구는 없는 고인 물과 같아서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인구 10만명당 사망률을 의미하는 ‘표준화 사망비’로 보면 노숙인들의 사망률은 일반인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특히 질병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낮은 20대 노숙인의 사망률은 같은 또래에 비해 최대 11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환경 자체가 노숙인들 건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주영수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 1999년~2009년까지 사망 원인을 종합해 보면 다쳐서 사망하는 사례들이 가장 흔했고, 술과 관련한 간 질환이 그 다음이었다”라고 분석했다.
노숙인들은 “살아서도 존중받지 못한 인생인데 죽어서도 존중받지 못하다”고 토로한다.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포기한 고립 사망자의 경우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시체 처리 규정 때문에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을 포함해 이처럼 아무도 돌봐주지 못한 외로운 죽음들이 매해 1,000명에 이른다. 그 해 사망한 노숙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동짓날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의 공동기획단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법적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노숙인들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며 “적절한 장례를 보장받기 위한 공영장례제도의 도입과 기초생활보장 장제급여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계를 배회하는 노숙인들= 정부에 따르면 국내 노숙인 수는 지난해 기준 1만 2,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자활·재활 시설 및 일시보호 시설 등에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1만1,000여명 가량 된다.
특히 시설 생활 노숙인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1,000여명 가량의 노숙인들은 그 숫자가 줄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일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거리 노숙인들은 가정 불화 및 가족 해체를 경험했고, 자퇴 및 퇴학 등 정규 교육 과정에서도 배제되고, 법률 위반 등의 범죄 행위에 노출된 경험이 높은 편“이라며 “약물 및 술의 의존 경험도가 높은 특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통계 자체가 과소 추계돼 있다는 점. 정부 수치엔 찜질방이나 PC방, 고시원, 만화방 등 관리의 사각지대를 전전하는 이들이 빠져 있다. 이런 주거 취약 계층을 모두 포함할 경우 그 수는 정부 추산 22만 여명에 달한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노숙인은 인구학적으로 고정된 양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활 상태에서의 한 국면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행정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으론 노숙인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주거의 불안정성은 많은 문제를 낳는다. 죽음의 공포, 건강의 위협이 이들에겐 일상화 돼 있다. 지난해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노숙인 300명을 대상으로 사례 분석한 결과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비율이 전체의 36.2%에 달했고,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도 19.3%나 됐다.
범죄로의 노출도 문제다. 유홍준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 등이 실시한 2011년 연구 프로젝트에 따르면 무임승차나 노상방뇨, 음주소란 등 일탈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노숙인 비율이 66.8%에 달했다. 이 중 폭력, 절도, 금전 갈취 등을 해본 이들이 각각 11.3%, 4.4%, 24.3%나 됐다.
반대로 노숙인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여성 노숙인이 성착취 및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1.7%에 달했다. 일반인들에 의한 언어·신체 폭력 뿐 아니라 인신·장기 매매 위협, 최근엔 명의 도용에 따른 금융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는 게 노숙인 관련 단체들의 지적이다. 노숙인들은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 ‘의자 뺏기‘ 딜레마 갖힌 노숙인들 = 우리나라의 노숙인 시설은 현재 150곳이다. 자활시설이 64개소로 가장 많고, 재활요양 시설(58), 쪽방상담소(10), 종합지원센터(10), 일시보호시설(8) 등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자활 시설의 경우 1곳당 노숙인 30.5명이, 재활·요양 시설은 1곳당 144.1명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소한의 사적 공간이 담보되지 못하는 집단 거주 환경은 시설 노숙인들으로 하여금 ‘일탈’을 욕망하게 만든다. 최성남 전국노숙인시설협회 정책위원장은 “장애인 단체의 경우 대규모 시설이 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인권침해의 구조적 장벽을 허물기 위해 30인 이상의 생활 시설은 없애기로 결의하고 있다”며 “반면 평균 140명이 넘는 노숙인들의 재활 및 요양 시설의 소규모화에 대해선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평’ 쪽방은 자기 공간을 갈구하는 노숙인들이 거리에 나앉기 전 몸을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다른 곳에 비해 거주 비용이 저렴한 덕에 많은 노숙인들이 쪽방 생활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개발 열망이 쪽방에도 들이닥쳤고, 노숙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터전’을 잃고 있다.
서울 동자동, 영등포동, 남대문 지역 등에 있던 쪽방 자리 일부를 이미 마천루 건물, 게스트하우스 등이 점령했고, 현재 남아 있는 쪽방도 임대 사업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서울역 연세빌딩 부근 쪽방촌 주민 260명에 대한 건물주의 퇴거 통보가 있었고, 그곳에서 수년간 생활을 꾸려갔던 주민 대부분이 방을 뺐다. 동자동 쪽방 주민 김정호씨는 최근 서울 중구청에서 열린 집회에서 “우리는 한쪽 어깨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요구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살아 있는 목숨이니, 제발 살게 좀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남기철 교수는 노숙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을 ‘의자 뺏기’로 설명한다. “한 사회에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택 수와 전체 수용자 수의 차이만큼 ‘의자’에 앉을 수 없어 결국 구성원 중 누군가는 노숙 생활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게임 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 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탈노숙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해 시설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회전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집 한 채를 주는 게 비용이 싸다” =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현행 노숙인 정책이 “시설 입소를 중심으로 한 ‘관리’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숙인 문제의 ‘실질적 해결’보단 대규모 시설을 활용한 ‘집단 관리’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인데, 이는 ‘시설→쪽방→고시원→거리→시설’이라는 만성적 회전문 현상을 낳는 주된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서울시 노숙인종합지원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노숙인 시설을 이용한 이들 가운데 ‘노숙 생활을 마친다(탈노숙)’는 이유로 퇴소한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선진국에선 1990년대 이 같은 ‘시설 중심’ 정책의 한계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주거 중심’으로 정책적 사고를 변화시켰다. ‘주거 중심 정책’은 노숙인 지원의 방점을 ‘안정된 주거’에 두겠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노숙인 각자에게 ‘살 집을 마련해 준다’는 얘기다. 미국의 ‘하우징 퍼스트(Hosing First)’, 노숙 종식을 위한 캐나다 연합(Canadian Alliance to End Homelessness)의 주거 지원 캠페인, 스웨덴 스톡홀름시의 ‘도심 영구 거처 제공 정책’, 영국의 ‘연속 이틀 노숙 방지(No Second Night Out)’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 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주거 중심’ 정책이 경제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것. 만성적 거리 노숙인을 양산하는 시설 대책 대신 차라리 집을 한 채씩 주는 정책이 더 적은 예산으로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 및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숙인들에게 주거지를 지원해주는 데 들어가는 한 해 비용은 1인당 1만4,000달러(약 1,649만원)로 이들을 거리에 방치하는 데 따른 의료 및 사법 비용 3만9,458달러(약 4,648만원)의 35%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최소 비용만 받고 집을 제공한 결과 응급실 및 병원 이용이 80% 가까이 줄어 18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고, 위법 행위로 이들이 사법 처리 되는 비율 역시 72%나 급감했다.
우리나라는 서울시 등 재정 여력이 있는 소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거 우선 정책을 선별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시가 실시한 ‘단기월세지원(임시주거지원)’ 사업은 프로그램 이용자의 80%가 노숙을 청산했을 정도로 뚜렷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노숙인 정책 대부분이 지자체 소관인 현실에선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대다수 지자체가 정책 집행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노숙인 재활요양 시설을 제외한 모든 업무가 지자체 소관으로 지방 정부에 과도한 위임이 이뤄진 실정”이라며 “주거 지원 사업은 국토교통부와 복지부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주거 지원 정책’은 이런 행정적 한계를 압도하는 걸림돌이 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이 그것. 쉽게 말해 “ 게으름뱅이 노숙인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라는 사회적 비난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더 큰 과제다.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적 혜택엔 일정한 도덕적 정당성이 따라야 한다. 장애유공자가 저소득 싱글맘에게 혜택을 주는 일은 정당하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진 노숙자에게 아파트를 주는 일은 또 다른 논리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철저하게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는 논리다. (중략) 이 문제는 우리에게 불쾌한 선택을 강요한다. 우리는 도덕적 원칙을 고수하거나 아니면 효율적 해법을 적용해야 한다. 두 가지를 모두 얻는 길은 없다”
/글·그래픽=유병온기자 rocinante@sed.co.kr, 영상=이종호기자, 정가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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