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3일 아일랜드계 제약업체 샤이어는 미국 뉴저지의 제약사 NPS파마큐티컬스를 52억달러에 인수했다. 올해 들어 첫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이었는데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샤이어가 전액 현금으로 거액의 인수대금을 치른다는 내용이었다. 샤이어는 전년 10월 미국의 경쟁 제약사 에브비가 자사 인수를 포기하면서 물어낸 위약금 16억달러에 더해 경영실적 개선 등으로 쌓은 유보금 등을 쥐고서 판을 흔드는 승부를 걸었다. 물먹은 에브비 역시 거액의 위약금을 물고도 곧이어 백혈병 치료약 개발로 급부상한 파머시클릭스를 210억달러에 사들였다.
올해 전 세계 M&A시장을 달아오르게 했던 기업사냥 경쟁의 한 단락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기업 인수 대전이 뜨겁다. 가뜩이나 세계적 경기침체로 투자를 꺼리며 유보금을 쌓아온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제로 수준에 육박하는 주요국의 저금리 기조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호재까지 만나자 그간 미뤄온 몸집 불리기와 신사업 발굴을 위해 일시에 현금 홍수를 일으키며 M&A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최대 기업 사냥터는 바이오 분야다. 통신·에너지·소비재 분야도 그에 버금가는 격전지로 꼽힌다. KPMG가 미국의 735개 주요 기업과 투자은행(IB),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작성한 '2015년 M&A전망' 자료를 보면 기업(복수 응답)의 84%가 의료·제약·생명과학 등 바이오 분야를 대상으로 지목했다. 통신·미디어 등의 분야를 노리겠다는 응답도 62%에 달했다.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분야를 기업 인수 분야로 응답한 기업도 각각 36%였다. 소비시장 분야에서 기업 쇼핑을 하겠다는 업체도 34%에 달했는데 블룸버그의 통계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소비시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식품 분야로 현재까지 전년 대비 107.9% 증가한 673억달러의 매각거래가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로열더치셸이 470억파운드에 영국 천연가스기업 BG그룹을 인수했고 식품 분야에서도 미국 식품업체 크래프트푸드그룹과 하인츠가 합병 협상을 타결 짓는 빅딜이 이뤄졌다.
지역 및 국가별로는 미국이 올해 M&A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수 등에서 경기회복세를 타고 있어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되살아난데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연내 칩머니 막차를 타려는 기업들의 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KPMG는 "저금리와 기록적인 주가(상승), 고용수치 개선, 넘쳐나는 현금 덕에 미국 (M&A 분야의) 중개업체들이 고무돼 있다"며 "미국의 경제·시장여건이 계속 좋다면 2015년 최소한 1건 이상의 기업인수를 하겠다는 기업이 82%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이들 기업 중 11%는 11건 이상의 기업인수를 연내에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은 아시아, 특히 양적완화와 금리인하를 단행 중인 일본에서도 빚어지고 있다. 일본 우정그룹은 지난 2월 호주 최대 물류업체 톨을 51억달러에 인수했으며 유니클로 브랜드로 유명한 일본 패션업체 패스트리테일링은 몸값이 50억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뉴욕의 패션브랜드 J크루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에센추어스트래티지의 요코타키 다카시 상무는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투자를 기피해 현금을 유보해왔지만 풍부해진 현금이 M&A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올해와 내년 일본 기업들의 M&A가 늘어날 것이라고 최근 CNBC방송에 출연해 진단했다.
물론 관련 시장을 위축시킬 위험요인은 잠재해 있다. 무엇보다 M&A 시장의 주된 산파 역할을 하는 사모펀드가 갑자기 움츠러들 수 있다. 미국 시장정보매체 레칸터는 '2015년 M&A 전망' 편에서 "사모펀드의 현금이 전례 없는 규모로 시장에 투자될 수 있지만 펀드매니저들은 금융위기 이후 보다 엄격한 접근을 하고 있다"며 사모시장이 1조2,000억달러의 막대한 현금을 들고도 투자위험을 기피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이 본격화할 경우 저금리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KPMG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기업의 85%가 연준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 운용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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