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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7월 23일] 좀비기업을 위한 변명

디지털TV에 들어가는 오디오칩을 만드는 네오피델리티의 이덕수 사장은 지금도 창업 초기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창업 10년을 맞은 지금이야 대기업에 안정적으로 납품하며 연매출 500억원대의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초기 7년간은 매출이 전혀 없거나 기껏해야 한해 20억~30억원을 벌어들여 존립 자체도 쉽지 않았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단지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했던 디지털 오디오앰프솔루션이라는 기술 뿐이었다. 이 사장은 나름 기술력을 갖췄다고 자신했지만 변변한 실적도 제대로 없다 보니 금융회사 거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대기업의 개발용역을 따내면 매출이야 쉽게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오직 자체 기술개발에만 매달려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사장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기술보증기금이 선뜻 지원에 나선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하반기들어 대대적인 구조조정작업이 진행되면서 한계기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책자금 등에 의존해 간신히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과감히 퇴출시켜야 경제 전반의 활력을 되살리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위기상황이 일단 마무리된 만큼 부실기업을 없애고 될만한 기업에 지원을 몰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산업현장을 다녀보면 이 같은 밀어붙이기식 구조조정이 과연 능사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게 결국 사무실에 몇 명이 모여 앉아 기업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최근 몇 년간의 매출이나 이자보상비율 같은 것들을 계량화시켜 칼로 무자르듯이 판정한다고 볼 때 해당기업의 기술력이나 미래 성장가능성 등 중요한 것들을 간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근한 예로 네오피델리티 같은 기업이라면 창업 초기 7년간이나 매출을 일으키지 못했으니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됐어야 마땅하다고 판단될 듯싶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면‘미래 가능성이나 기술력’을 중시하고 보다 긴 안목으로 기업의 가치를 판단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재무제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업의 내재가치나 잠재력 등을 꼼꼼하게 들여다 봐야 건전한 기업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터에 환율이나 원자재 급등 같은 불리한 경영환경에 놓인 중소기업들에게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살아남을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일찌감치 바닥난 정책자금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올해 정책자금 배정은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들었거니와 이마저 신청이 몰려 조기 소진되는 바람에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정부의 출구전략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직 입구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왠 출구냐며 하소연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정책자금 확대가 좀비기업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는 문제점을제기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중소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소중한 일터를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실제 정책자금 지원업체의 고용창출 인원은 평균 2.2명으로 중소기업 평균치(1.7명)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을 정도다. 따라서 정부의 출구전략 자체야 불가피하겠지만 중소기업들이 한꺼번에 자금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다 세심하고 단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마감시한을 정해놓고 단지 숫자를 맞추기 위한 일률적인 구조조정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관계 회복에 남다른 노력을 쏟는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잇다. 하지만 기업 숫자를 무조건 줄이는데서 벗어나 한단계 차원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중소기업 육성정책이라는 점을 곱씹어봐야 한다. 정상범 성장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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