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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저축의 날 50돌에 부쳐


오는 29일은 저축의 날 50주년을 맞는다. 저축의 날은 원래 1964년 9월21일이었는데 1973년 증권의 날을 흡수ㆍ통합하면서 10월25일로 개정됐다가 1984년 다시 개정돼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정착됐다. 그 사이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도 50이 훌쩍 넘어 흰머리에 잔주름이 부쩍 늘었다. 초등학생 시절 반 강제(?)로 만든 예금통장을 손에 쥐고 해맑은 미소를 짓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단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 경제발전 역사의 산 증인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인생을 시작해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 개설했던 통장에는 돈이 쌓여가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개인순저축률)은 연평균 20%를 넘어설 정도로 줄곧 상승했다.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빠른 시간에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밥풀 한 톨 남겨도 야단맞던 시절에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이 저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기업의 대출과 투자로 확대ㆍ재생산됐기 때문이다.

저축률 바닥 소비도 위축시켜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자유화ㆍ개방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이 시대를 풍미했다. 기업들은 국내 저축만으로는 글로벌 무한경쟁에 요구되는 투자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외채를 끌어들였으며 개인들은 저축을 줄이는 대신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계저축률은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24.7%를 정점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11년에는 2.7%까지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5.3%)은 물론 미국(4.2%)ㆍ일본(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가계저축률이 떨어진 데에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저축 부담과 의료보험과 같은 비(非)소비지출이 늘어난 것도 일조했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는 베이비붐 세대와 자식들의 일자리를 앗아가기 시작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이 애써 모은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대신 저소득ㆍ고령 세대의 부채를 무겁게 만들어 가계의 저축여력을 소진시켜왔다.

최근 한 경제연구소는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감소할 경우 투자는 0.25%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19%포인트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1980년대 말 이후 가계저축률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10%를 넘던 설비투자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이 공히 2~3% 정도로 현격히 낮아진 최근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가계저축이 감소하니 소비가 위축돼 이에 기반을 둔 서비스업 등 내수산업이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것은 물론,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켜 신용불량자 및 개인파산 문제를 심화시키고 개인의 노후생활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장기저축 우대 등 장려책 마련해야

이렇듯 한국판 잃어버린 10년, 아니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저축의 날 50주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금의 잉여주체가 아닌 서민가계에 한 번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종용할 수만은 없다. 예금통장을 손에 쥐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어린이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공적저축이나 투자성예금의 운용 등에 관한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저축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저축을 늘리는 고소득층, 국내 투자 및 고용을 늘리는 기업을 우대하는 종합적인 저축장려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가격을 포함한 물가안정에 총력을 기울여 화폐환상(money illusion)을 근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폐환상에 빠져 배부른 돼지는 잠시 웃을 것이나 근검절약으로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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