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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치금융보다 무서운 '관치·정치 경영'


경제학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수요와 공급의 합치(合致)다. 그 속에서 가격이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된다. 비단 정형화된 시장뿐 아니라 일반 사회 역시 서로의 기대(수요)에 부합하는 행동(공급)을 원한다. 이것이 바로 상식이요, 이를 강제하는 것이 바로 규율과 법이다.

정부가 이따금 개입해 시장의 일탈 행위를 바로 잡기도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교직(交織)된 수요공급의 곡선을 깨려 하지 않는다. 부조리가 개입되고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음흉한 손길이 닿는 순간 시장이 망가진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선 금융산업을 놓고 보자. 오늘날 우리 금융회사가 망가지고 숱한 발전 대책을 내놓아도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수요 공급 원리를 깨려는 집단이 넘쳐난 탓이다.

모피아와 청와대도 모자라, 힘깨나 쓴다는 정치인까지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으려 하니 금융사가 멀쩡할 리 없다. KB가 아직도 헤매고 우리은행에 정치권에 때가 묻은 사람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것은 그들을 향해 품어낸 '정치금융'이라는 토사물을 치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만으로 모자란 것일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금융을 넘어 제조업까지 오염시키려는 집단이 넘실대고 있다.

정부 압력 금융 넘어 제조업까지 뻗쳐

대우조선해양의 대표 선임 문제는 딱하기까지 하다. 현 대표의 임기가 3월 말로 끝나는데 이사회는 아직도 후임 선임건을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윗선'에서 '하명(下命)'이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원리 원칙은 사라졌다.

지난해 빅3 조선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수주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낙하산' 앞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쯤 되면 정치금융을 넘어 '정치 경영'이라 할 만하다.

이뿐 아니다. 한국의 제조업체들은 '전지전능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기업들은 관료들이 꾸며내는 정책 구상에 전가의 보도(寶刀)가 됐다. 이제는 재정과 금융·세제라는 정책조합(policy mix)에 기업이 '제4의 조합'으로 구성된 느낌마저 든다.



기업이 가진 '비상 자금'에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이름을 붙여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배당이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고 이제는 임금 인상론을 정책의 화두로 내건다. 다양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때로는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에 대한 일반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한다. 배당으로 외국인 배만 불리고 최저 임금을 올려 중소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2차원적(?)인 고민은 애써 지우려는 듯하다.

재계의 반발 움직임이 엿보이자 13일에는 아예 부총리와 장관들이 경제 5단체장들을 불러 모았다. 눈앞에서 압박하겠다는 '뻔한 수'를 또 들고 나왔다.

기업들은 이번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의 압력에 비위를 맞출 것이다. 정권의 통치자금을 대는 음습한 비밀 창구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도구라는,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기업에 비정상적 요구 계속해선 안돼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관료는 "정책을 만들려는데 창의성이 고갈될 때 가장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경기가 나빠져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밤새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3년 전, 5년 전 선배들의 정책을 찾아봤다는 것이다. 10년도 훨씬 전 이헌재 전 부총리가 내놓았던 '한국판 뉴딜'을 꺼낸 관료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짐작이 되기는 한다. 여당 대표가 한국은행을 향해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대놓고 겁박하고, 한은이 아무 말 못 한 채 이를 받아들이는 후진적 금융 행태를 보면서 마냥 비판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급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해보지 않은 정책 실험을 할 수밖에 없지만 사기업의 경영 행위를 향해 이런 식으로 감놔라 배놔라 해나가면 시장 원리는 깨지고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기업은 팔방미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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