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독립-중국 압력 속에서 절묘한 줄타기 대응법 제시
신장 혹은 서역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중국 고전인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인도)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의 무대다. 혹은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나 나오는 황량한 지역으로 겨우 기억될 뿐이다.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지역이다. 이는 역사나 지역 연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신장에 관한 연구는 그간 동서 문명 교류사를 다루는 저작에서 곁다리로 언급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 출간된 '신장의 역사'는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되는 신장지역 통사(通史)다. 고대의 지리적 환경에서부터 최근의 민족 분쟁 이슈까지 수천년에 걸친 역사를 이 지역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신장이 그간 '지나가는' 지역으로만 인식됐을까. 신장은 중앙유라시아의 유목 민족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각축전이 벌어지는 현장이었다. 어느 한 쪽도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배하며 현지인들을 자국화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기원전 120년 무렵 한나라가 신장지역까지 세력을 넓혔고, 당나라도 티베트인들을 몰아내고 우위를 점했지만 그 기간도 그리 길지는 못했다. 그 외에는 인근의 강성한 유목세력들이 번갈아 이 지역을 점유했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ㆍ종교ㆍ왕조가 이 곳을 '지나갔다'.
이 지역에서 사용됐던 언어가 토하라어ㆍ투르크어ㆍ중국어ㆍ소그드어 등이고, 종교도 대승/소승 불교에 조로아스터교ㆍ네스토리우스 기독교ㆍ이슬람교 등이 이 지역에서 번성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 지배 왕조도 중국의 한ㆍ당ㆍ청ㆍ원 나라와 카라한조, 중가르, 카자흐로 다양한 지배세력을 거치며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18세기 중반 청나라가 신장지역을 점유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중국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지만, 위구르족에 대한 유교경전ㆍ중국어 교육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서부 대개발 정책 하에 한족을 대거 이주시켰고, 이는 위구르인들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며 지역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청이 몰락한 후 중국 군벌의 폭압적인 지배 아래서 신장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설립하기도 했지만, 국민당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군벌 세력에 의해 진압 됐다. 여전히 민족분쟁의 불씨는 남았고, 지난 2009년 일어난 우루무치 유혈사태에서는 모두 197명이 숨지고 1,7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유혈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는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책 발간 이후 중국 정부가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에 올랐다는 점이 결국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 책 전반에 걸쳐 신장의 정체성과 그 배경을 정의하고, 단순히 중국이나 위구르적인 것으로만 설명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준이다.
대신 '줄타기'라는 이름을 붙인 마지막 장에서 신장지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세 사람을 소개한다. 민족 저항운동 지도자인 라비예 카디르와 한족 출신 재벌사업가 쑨광신, 그리고 줄타기 예술가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아딜 호슈르가 그들이다.
라비예 카디르와 쑨광신은 모두 비천한 신분에서 신장의 지리와 중국의 경제 개혁, 소련의 붕괴를 이용해 큰 돈을 벌었다. 현재 라비예는 '모든 위구르인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정부와의 마찰 끝에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쑨광신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갑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줄타기는 아딜 호슈르가 하고 있지만, 라비예와 쑨광신은 보이지 않는 줄타기로 돈을 벌고 정치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셋을 하나로 묶으며 저자는 균형감각을 주문하고 있다. 신장지역의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은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요구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사이 위태로운 '줄타기'가 성공했을 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위구르인들에게 주변국들 간의 알력과 국제사회의 관심, 현지인들의 복잡한 감정 간의 절묘한 '균형감각'을 요구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