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5월22일,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항구. 도시 이름을 딴 320톤짜리 목조선 사바나호가 닻을 올렸다. 목적지는 영국 리버풀. 증기기관을 단 선박으로는 최초로 대서양 항해에 나섰다. 사바나호의 당초 설계는 쾌속범선. 건조 도중 탈착이 가능한 90마력짜리 증기엔진 두 대를 설치하고 배의 양쪽에 외륜을 달았다. 1818년 8월 진수돼 연안과 하천의 시범운항을 마친 사바나호는 먼로 대통령의 격려 속에 대서양 횡단을 기획했으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승객은 물론 선원조차 소음과 검은 석탄에서 나오는 그을음을 기피한 탓이다. 결국 승객도 태우지 못한 채 출항한 사바나호는 29일 11시간 만에 목적지에 닿았다. 항해 중 증기엔진을 돌린 80시간 동안에는 근처를 지나던 범선들이 사바나호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구조하러 접근하는 촌극도 있었다. 영국은 사바나의 등장으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미영전쟁(1812년)의 앙금이 남은 미국 정부가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돼 있는 나폴레옹을 탈출시키기 위해 쾌속 증기선을 동원했다는 낭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소문을 뒤로 하고 영국을 떠난 사바나호는 스웨덴과 러시아,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왔다.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차르(황제)로부터 건조비용의 2.6배가 넘는 10만달러에 팔라는 제의까지 받았다. 성공적인 항해와 달리 사바나호는 불운을 맞았다. 대화재와 불황이 겹쳐 증기엔진은 제철소에 팔려나가고 헐값에 매각된 선박 자체도 1821년 암초를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 사바나호는 짧은 생을 마쳤으나 역사에 두 가지를 남겼다. 미국 의회는 1933년 사바나호의 출항일을 해운의 날로 정했다. 1962년 등장한 세계 최초의 원자력 상선에도 ‘사바나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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