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내덕동 청주대 학생회관 3층. 새해 초 한겨울 방학인 탓에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지만 이곳 강의실은 불빛으로 환하다. 50~70대 장·노년 학생들이 20대 초반 손자뻘 선생님들과 만학의 꿈을 이뤄가는 무궁화야간학교의 풍경이다. 청주대의 야학은 지난 1976년 열려 올해로 벌써 39년째다. 무궁화야학 53·54대 교장을 맡은 최용식(24·행정학3·사진)씨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정보홍수 시대에도 문맹으로 고통 받고 학교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며 "새해에는 배움의 열망이 야간학교에서 더 많은 열매로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내 동아리로 출발해 수년 전 비영리단체 등록을 마친 무궁화야학이 지금껏 배출한 졸업생은 줄잡아 1,200여명. 교육기회를 놓쳐 뒤늦게 학교 문을 두드리는 노년층이 대부분이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중고교 자퇴생들도 있다. 주 5일 오후6시30분부터 9시45분까지 늦은 수업이지만 한글을 깨치기 위해 한글반을 찾아오는 할머니도 있고 멀리 충북 오창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등교하는 '열공' 어르신도 있다.
"평범한 50대 초반 가정주부 박순자(가명)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은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족들이 다 갖고 있는 대학 졸업장을 받고 싶어 야학을 시작했어요. 검정고시를 두 번이나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휴일에도 나와 공부한 끝에 2년 만인 2014년 8월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방송통신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곳 야학교사는 20명. 19명이 최씨처럼 봉사를 위해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가 야학교사가 된 20세 남짓의 청주대 학생들이다. 교사 한 명이 매주 이틀을 봉사한다. 2~3년간 봉사하면 수업시간이 총 500~700시간을 훌쩍 넘는다. 최씨는 "공교육은 당연히 받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야학교사가 된 후 배움의 기회가 누구에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며 "매주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지만 어르신들과 교감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진정 가치 있는 일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요즘 학생 수가 줄어 고민이 많다. 매년 4월·8월 검정고시가 끝나면 학생 수가 4~5명까지 준다. 그동안 지역주민 누적 졸업생이 증가한데다 홍보 부족과 노후해진 야학시설이 학생 수 감소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인재양성재단·로터리클럽 등 도내 민관 기관의 지원을 받아 학비가 무료로 운영되지만 교재·교구비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학생 한 명에게 주는 교과서 한 벌값만 7만~8만원에 달하는데 이 비용도 2014년에야 도교육청 지원으로 무료 지급했다.
최씨는 "교실의 전기시설도 낡아 한파에도 온풍기를 마음껏 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시설 개선과 학습 의욕을 높이기 위한 장학금 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궁화 야학교사들은 오는 3월 대학 개강에 맞춰 야학학생 모집을 위해 시내에 홍보 전단지를 배포할 계획이다. 배움의 열망이 있지만 교육정보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기 위해서다. 최씨는 "새해에는 작은 용기를 내 야학에서 희망을 키우는 이웃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