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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

"돈 더 푼다고 경기부양 안돼… 가계 빚 해결돼야 소비 살 것"<br>한은, 인플레 기대심리 억제 등 물가 안정 의지 필요<br>중국경제 8%대 성장 예상… 경착륙 해도 내부 문제면 우리경제 영향 미미할 것<br>실행력·불공정경쟁 잘 따져… 한중 FTA 협상에 임해야



"포퓰리즘식 정부 재정지출로는 경기부양 못합니다."

정치권에서 경기진작을 위한 추가 경정예산 편성론이 대두되자 현오석(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일침을 가하고 나섰다. 추경예산이 나중에 나랏빚으로 되돌아와 경기를 하강시킬 수 있다는 고언(苦言)이다.

현 원장은 2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추경예산으로) 돈을 더 풀면 경기 진폭만 키우게 된다"며 "차라리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소비를 좀더 촉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3% 중반대의 경제성장은 가능하다"며 "다만 물가에 내제된 수요 압력이 높다"고 걱정했다. 이에 따라 물가를 책임진 한국은행에 대해 "(올해 예상되는) 물가상승률이 2.6%인 것에 안심하지 말아야 한다"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 원장은 유럽발 재정위기 등에 따른 외환ㆍ금융시장 불안에 대해 "개발도상국들처럼 보유외환을 쌓는 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안 된다"며 "보유외환을 쌓는 것보다는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정확대 보다 가계부채·물가관리 주력을

현 원장이 경기 처방으로 재정확대보다는 가계부채ㆍ물가관리를 주문하는 것은 미국ㆍ유럽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차원에서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 재정확대로 돈을 푸는) 케인스식 처방을 냈음에도 경기가 안 살아났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렸다고 해도 그것으로 국민들이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빚을 갚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계 빚 문제를 풀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돈을 푸는 게 아니라 민간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진작론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하반기에 문을 열 19대 국회가 관련 법안을 원활히 처리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현 원장이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에 강력히 반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물가 때문이다. 그는 "경기가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가 돈을 더 풀면 오버슈팅(과잉대응ㆍover-shooting)이 돼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기대인플레 억제 적극 나서야

그는 인플레이션을 '치약'에 비유했다. 한 번 짜면 도로 못 집어넣는 치약처럼 물가도 한 번 오르면 낮추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성장률은 (인위적으로) 올릴 수 있어도 물가는 한번 오르면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현재 물가의 가장 큰 문제는 '기대 인플레이션'이라고 짚어냈다. 올해의 물가여건은 지난해보다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경기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은이 물가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현 원장은 일침을 놓았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2.6%로 전망되지만 거기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올해 비교적 낮게 전망되는 것은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과 공공요금 억제 같은 공급 측면 덕분일 뿐 기본적으로 수요 부문에 내제된 물가압력은 여전히 높다고 현 원장은 경고했다.

그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은이 물가억제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기 문제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생기므로 한은이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 잠재성장률 회복 못하는 이유 살펴봐야

현 원장은 올해 물가인상 기대심리와 대외변수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3%대 중반의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KDI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3.8%에서 3.6%로 하향 조정한 배경에 대해 "(경기 회복세를 보면) 지난해나 올해나 기울기는 비슷한데 지난해 4ㆍ4분기가 워낙 푹 꺼진 바람에 똑같은 기울기라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계적으로 3.6%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재 우리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다소 낮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앞으로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3%대로 계속 간다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 못하는 이유가 해외 요인 때문인지 국내 문제 때문인지 (정부가) 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가 예상하고 있는 올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4.3%다.

중국경제, 8% 이상 성장할 것



현 원장은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중국 경착륙 전망에 대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는 "유럽사태가 더욱 확산될 경우 중국 경제성장률이 6.5%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8%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원장이 중국 8%대 성장론의 근거로 드는 이유가 재미있다. 중국 정권교체가 경기불안을 초래하기보다는 경착륙을 막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올해 말 (중국 권력의 축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 내정자로 바뀌면 중국 내 모든 성에서도 지도부가 바뀐다"며 "이는 각 성마다 (지도부 자리를 지키려면 경제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물론 중국 경제에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연안지역을 보면 그렇지만 중국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상당히 임금 수준이 낮다"고 분석했다.

유럽 위기로 중국 경착륙 땐 한국경제 충격

현 원장은 "최악의 경우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더라도 해외 요인이 아니라 (거품 붕괴 등) 내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우리 경제에 대한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단언했다.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 물량 중 현지 내수판매용의 비중은 약 30%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나머지 70%는 중국을 통해 다른 국가로 수출하기 위한 반제품ㆍ부품 등이므로 중국 내수위축의 영향이 우리 경제에 큰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그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내부 요인이 아니라 그리스 재정위기와 같은 외부 요인으로 빚어진다면 우리 경제에도 '스리쿠션'으로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 문제가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가면 세계 경제 성장률이 3.5%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우리 경제가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중 FTA, 중국의 실행력 담보해야

현 원장은 우리 경제가 대외 경기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또 다른 완충제로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다. 다만 한중 FTA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와 FTA를 맺어왔지만 중국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라며 "중국은 많은 경우 국영기업에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FTA를 맺어도) 우리 기업과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국은 (국가 간 통상협정에) 사인하는 것과 실행하는 게 다른 경우가 많다"며 "중국이 미국 측에 지적소유권을 잘 지키겠다며 관련 협정에 사인을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중국과 FTA를 맺을 경우 그 실행력과 중국 공기업과의 불공정경쟁 위험성 등을 잘 따져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게 현 원장의 조언이다.




정부에 정책제안 역할 벗어나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날 것

■ 창립 41년… 새 도약 나선 KDI

"(1970년대에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슬그머니 사무실을 나와 경복궁 쪽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경제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들은 과분한 보수를 받고 있어 공무원들에게 항상 미안했습니다."

KDI 설립 초창기 멤버이자 제5대 원장을 지냈던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이 지난해 발간된 KDI 40주년 화보집에서 술회한 대목이다. 당시 우리 정부가 KDI '두뇌'들을 국내외에서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했음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한때 KDI에서 인재로 영입되면 일반 교수 2~3배 수준의 연봉과 아파트, 기사 달린 승용차 등을 지원 받았다. 지금 정서에서 보면 과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대우를 제공한 덕에 KDI에는 우수한 재원들이 몰렸다. KDI의 보고서가 사실상 정부 정책 방향으로 기정사실화될 정도로 소위 '약발' 받던 시절도 있었다.

창립 41년째인 지금은 어떨까. 학계ㆍ관계 인사들은 "KDI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안타까워한다. KDI 보고서가 정부ㆍ국회에 미쳤던 정책적 파급력은 약화됐다. 두뇌들의 이탈 우려도 제기돼왔다. 'KDI의 누구누구가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어느 민간 기구로 민원을 넣어 자리를 옮기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학계ㆍ금융계에 돌기도 했다.

KDI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뇌들에 대한 처우 문제가 선결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KDI 두뇌들의 초봉은 대학교수 초봉보다 나은 편이지만 이후 연차가 지날수록 역전된다. 국립ㆍ공립 교수들은 은퇴 후 공무원 연금을 받지만 KDI 연구원들은 교수보다 정년이 짧은데다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KDI 연구원은 업무도 일반 교수들보다 많은 편.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는 거주지마저 지방(세종시)으로 옮겨야 하니 두뇌들의 엉덩이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

물론 급변하는 정책환경에 대응해 KDI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못한 점이 자신의 위상을 깎아먹었다는 고언도 학계에서 나온다. 단순히 정책 아이디어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여느 연구기관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연임된 현오석 KDI 원장도 KDI가 탈바꿈 도전 앞에선 상황을 인지하고 조직의 혁신을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KDI가 과거처럼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제안한 정책에 대해 (정부 내부 조율이나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실행ㆍ홍보전략도 함께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는 KDI가 경제 분야 연구에만 국한하지 말고 사회ㆍ정치 등 다양한 분야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 원장은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들과 연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KDI를 글로벌 싱크탱크로 키워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약력

▦1950년 충북 청주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 ▦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 ▦미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경제학(박사) ▦행시 14회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경제기획원 동향분석과장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 ▦재경부 예산심의관ㆍ경제정책국장ㆍ국고국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기조실장 ▦세무대학장 ▦국제무역연구원장 ▦고려대ㆍ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17대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 ▦공공기관경영평가단장 ▦KAIST 테크노경영대 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대학총장 ▦서울G20 준비위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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