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엄마는 어쩌다보니, 준비없이 엄마가 된다. 아직 자신의 삶도 버거둔데 '엄마'가 되자마자 갑자기 지혜와 희생과 사랑의 화신이 되길 강요받는다. '엄마'와 '여자'의 삶이 조화롭고 자식에게 인정받으면 '성공한 인생'이 되겠지만 쉽지가 않다. 실수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자식들은 만족이 없다. 그래서 엄마는 억울하고 슬프다. 1959년작, '슬픔은 그대 가슴에'는 그런 엄마들의 슬픈 일생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는 두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백인 엄마(라타 터너)와 남의집 하녀로 살지만 딸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흑인 엄마(주아니타 무어).
두 엄마는 오랜 시간을 서로 친 자매처럼 의지하며 딸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결국 라나 터너는 배우로 성공한다. 하지만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흑인 엄마의 딸 사라는 누가봐도 백인이었던 것이다. 흑인 엄마를 수치스러워하고 완벽한 백인으로 행세하는 사라는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 교실로 우산을 갖고 온 엄마를 하녀라고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숨긴다. 관객은 울음을 참기 힘들다. 딸때문이 아니라 그런 철없는 딸을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는 흑인 엄마의 찢어지는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출해서 술집의 댄서가 된 딸을 보는 흑인 엄마.
그렇다고 화려한 백인 엄마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출세 때문에 헤어졌던 사랑하는 남자를 다시 만났지만 웬걸, 딸도 그 남자를 사랑한단다. 한 남자를 두고 모녀가 사랑하게 된것이다. 충격적인 이 상황에서 백인엄마는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하지만 딸의 반발은 더 거세다. '연기하지 마라'며 엄마를 비난하고 딸의 행복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건만, 정작 그 딸은 '늘 외로웠다'며 엄마의 인생 자체를 거부한다. 병들고 지친 흑인엄마가 마지막으로 딸을 찾아가서 '미안하다, 그동안 너를 너무 가둬뒀다'며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보자고 말하는 장면은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장례식에 뒤늦게 도착한 사라는 엄마를 부르며 통곡하지만 이미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엄마가 생각나서 그냥 눈물이 나온다. 딸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않던 우리 엄마는 늘 그러셨다. "여자의 왕관은 자식이 씌워준다"고. 본인의 삶은 실패했지만, 딸이 왕관을 씌워줄거라고 엄마는 믿으셨다. 왕관까지는 아니라도 '감사하다'고, '엄마는 정말 열심히 잘 사셨다'고 위로해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아프고 죄스러울지 그때는 몰랐다. 아직 기회가 있는 분들은 오늘, 엄마를 좀 안아주시면 어떨까….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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