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갤 얼집 괜찮을까요?" "윰차 타고 문센 갔어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30대 김모씨는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읽을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줄임말투성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4갤은 4개월, 얼집은 어린이집, 윰차는 유모차, 문센은 문화센터라고 하더라"며 "긴 단어도 아닌 두세 글자 단어를 굳이 줄여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등 한글을 기리기 위한 노력과는 달리 지나친 줄임말에 따른 한글 파괴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거에는 정체불명의 줄임말이 10대 청소년의 전유물이었다면 최근에는 20~30대의 성인도 거리낌이 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성인이 활동하는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 뜻 모를 줄임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20~30대 엄마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줄임말 남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딸내미는 딸램, 유치원은 유천, 수영장은 셩장, 블라우스는 블랏, 시어머니는 셤니로 글자 수를 한두 자 줄여 표기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시아버지를 '#G(샵지)'와 같은 특수문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지나친 줄임말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안모(28)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애유엄브'라는 글을 보고 영어 단어인가 생각했는데 '애는 유치원 보내고 엄마는 브런치'의 줄임말이더라"며 "어른들이 이렇게 맞춤법을 파괴하는데 아이들에게만 줄임말을 쓰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대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캠퍼스에는 개파(개강파티)나 종파(종강파티), 전필(전공필수), 전선(전공선택), 긱사(기숙사) 등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도 학관(학생회관)이나 학식(학생식당) 등의 줄임말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대학생 권모씨는 "처음에는 인터넷이나 휴대폰에서만 줄임말을 썼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실제로 대화할 때도 자주 쓴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최근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한 번을 '함'이라고 쓰는 등의 줄임말을 자주 보고는 한다"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줄임말이 지나치게 사용되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조문을 뜻하는 '문상'이 '문화상품권'으로 널리 쓰이다 보니 원래 단어의 의미를 헷갈려 하는 일도 벌어지기 일쑤다.
단순히 글자 수를 줄이는 정도를 넘어서 자음만을 쓰는 경우도 있다. 10대와 20대 사이에서는 단어의 자음만을 적는 'ㄱㅅ(감사해요)'이나 'ㄱㅊ(괜찮아요)' 'ㄱㄷ(기다려)' 'ㅅㄱ(수고하세요)' 등이 쓰인 지 오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확산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그룹의 소속감이나 유대감 등을 가지기 위해서 구성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줄임말을 쓰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런 줄임말 사용이 습관화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표준어 대신 줄임말을 쓰는 부작용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