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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명ㆍ17)는 2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뒤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 사춘기를 지낸 성주는 정서불안과 애정결핍 증상을 보여 지난해 교내 심리검사에서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인지 남학생인데도 앞머리를 길게 기른 성주는 상대방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등 자신감 없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소재 모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성주를 포함한 7명의 학생이 심리상담사들과 함께 한창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느라 바빴는데 두 팔을 활짝 펴고 폴짝 뛰는가 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거나 한쪽 발로 뒤뚱거리며 섰다. 그 사이로 성주는 몸에 있는 모든 힘을 뺀 채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김지선 연극심리상담사는 "자신이 앞으로 바뀌고 싶은 모습을 표현하라고 주문했더니 긴장과 불안을 모두 없앤 몸짓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현재 모습을 표현하라는 과제에서 성주는 양 주먹을 꽉 쥐고 몸에 잔뜩 힘을 넣었다. 김 상담사는 "연극치료를 통해 성주가 마음속의 압박과 부담 같은 짐을 찾아 덜어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는 성주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생명보험회사들이 기금을 내 설립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2년부터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이런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99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364명이 참여했다.
각 학교에서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25주간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연기도 직접 해보며 마음속 갈등을 풀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동화 '미운 오리 새끼'를 연기한다면 처음에는 주변의 따돌림을 받는 주인공이 됐다가 거꾸로 친구를 괴롭히는 다른 오리역도 맡으며 각자의 상황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겪는 것이다. 김 상담사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간접적으로 마주하면서 나와 상대를 다시 바라볼 수 있고 내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깨달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며 "참여하는 학생끼리 서로 지지하고 공감하는 과정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년 연속 자살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10대와 20대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는 자살이 차지하고 있다. 최인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청소년 자살예방 사업방향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우울감과 스트레스, 비합리적 신념 같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와 가장 큰 자살의 원인으로 꼽혔다. 연극치료는 이런 청소년의 심리 문제에 초점을 맞춰 고안됐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억압받고 우울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고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생명존중의식을 높이는 교육이나 미술치료 등도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 활용되는 기법으로 꼽힌다.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청소년들은 성인과 달리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해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자살 예방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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