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국제재판소에서 활동하는 한국 법관이나 직원 수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지요."
구(舊)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20세기 후반 최악의 반(反)인류범죄로 꼽히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전범들을 단죄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권오곤(59ㆍ연수원 9기ㆍ사진) 재판관은 지난 2001년 한국인 최초로 재판관으로 선출돼 부소장 자리까지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인종 청소'를 자행한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1급 전범' 라도반 카라지치 같은 굵직한 재판을 맡아 화제가 됐다.
강연 참석 등의 이유로 얼마 전 귀국한 권 재판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국제사법 분야에 진출한 한국인의 수가 적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ICTY의 예를 들며 "한국의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한 '지리적 배분'을 따지면 전체 1,000명 직원 중 적어도 6명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단 1명뿐"이라며 "그것도 최근의 일로 관심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재판관은 ICTY에서 일해온 소감을 '재밌음'으로 압축했다. 그는 "ICTY는 영미법과 대륙법 체계를 절충한 형태를 따른다"며 "매일 재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나간다"고 설명했다. 재판관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고민을 한 끝에 결과를 내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것.
권 재판관은 "역시 절충형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한국과 비슷하다"며 "양자를 조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한국인이 활약할 가능성이 높아 후배 법조인이 도전해볼 만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권 재판관은 일본이 최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독도 문제를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낸 것과 관련해 전문 분야가 아님을 전제한 뒤(권 재판관은 형사재판관)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마당에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제소에 응하지 않으면 관할권이 생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장기적으로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 재판관은 "ICJ에 한국 출신 재판관이 단 한 명도 없다"며 "(대응책 마련 차원에서라도) ICJ에 도전 혹은 진출하는 한국 판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은 이미 1920년대부터 국제 재판관을 배출해온 상태다.
오는 2014년 말에 임기를 마치는 권 재판관은 계획을 묻자 "교편을 잡는 방법도 있고 국제 재판을 더 맡을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권 재판관은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관 2자리 중 여야 공동 추천 몫의 후보군에 이름이 올라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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