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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스펙 요구할 땐 언제고 …


"스펙 요구하길래 몇 년 걸려 스펙 만드니까 스펙초월이라고요? 차라리 시험 봐서 등수대로 자르는 공무원시험이 공정한 것 같네요."

34세의 공공기관 취업준비생 김모씨는 정부의 스펙초월 방침이 하나도 반갑지 않다. 공공기관 채용과정에 소위 스펙이라고 불리는 토익 등 영어 관련 시험 성적이나 각종 자격증은 물론 학력과 수상경력 등은 보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공공기관 중 가장 인기가 높고 전형이 까다로운 금융 공공기관도 최근 스펙초월에 합류했다.

그런데 정작 구직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우선 수년간 준비해온 영어성적과 자격증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불만이 크다. 어학 성적표와 각종 자격증을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공공기관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공공기관이 요구한 스펙을 채우느라 몇 년을 쏟아부은 '장수 준비생'들은 더욱 그렇다.

드러내놓지 않은 채 스펙을 요구하는 공공기관도 많다. 서류를 낼 때는 안 받지만 면접 전에는 받는 식이다. 몇 년째 시험을 치르는 구직자는 스펙초월을 선언한 공공기관의 필기시험이 확실히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공공기관이 구직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부 정보기술(IT) 자격증은 현직 5년 이상자가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스펙을 완전히 없애는 것인지조차 헷갈린다는 것이 구직자들의 한탄이다.



무엇보다 스펙초월로 인해 새로 생긴 전형에 대한 논란이 크다. '나와 세상' '물 자원과 미래' 등 여러 주제를 주고 자신만의 창의적 대답을 적어내거나 동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급기야는 구직자들의 혼란을 틈타 수백만원짜리 스펙초월 대비 강의가 등장했다. 과거 단순히 필기시험을 위한 학원을 다녔다면 요즘에는 스펙초월 대비 학원까지 다닐지 고민하는 것이 공공기관 구직자들의 모습이다.

정부가 스펙초월을 추진한 것은 분명 학벌이나 자격증 소지자에 가려진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뜻일 테다. 공공기관이 선도하고 민간기업이 따르는 선순환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스펙은 기본이고 현장 경험에 창의성까지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당사자가 싫어한다면 소용이 없다. 스펙초월 전형을 내놓은 정부 관계자가 지금이라도 구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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