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특유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3일 2012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자동차부품 관세 분쟁에서 승리한 뒤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임을 공언했다. 이처럼 미국은 사이버 갈등을 계기로 삼아 중국에 국가주도 발전 모델인 '베이징 컨센서스'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패권에 경쟁자로 등장한 중국이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기 전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반면 '중화민국의 꿈'을 내세운 시진핑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을 볼모로 잡은 채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주요2개국(G2) 갈등은 당분간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중간선거 앞두고 중국 때리기=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아시아 순방길에서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날아갈 때 의도적으로 중국이 그어놓은 동중국해 방위식별구역 상공을 통과했다.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지 말라는 신호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 장교 5명을 사이버 범죄 혐의로 기소한 것도 중국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지적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안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해킹한 건수는 미국은 물론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매우 적다"며 "이번 장교 기소는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경고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에 비판적인 미 의회와 국민들을 의식해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많다. 실제 이번 WTO에서 승소한 자동차 관세 분쟁은 재선 선거 기간이던 2012년에 제기된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중국이 대대적인 양보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추가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 정부는 기소된 중국 장교들의 스파이 행위에 대한 추가 증거 제시, 관련된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금융제재 등 보복성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이 미국 주도의 통상질서로 들어오지 않을 경우 위안화 절상 압력 등 무역 압박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이컵 루 미 재무부 장관은 3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위안화가 절상돼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몽의 길 가겠다"=하지만 이 같은 미국 측의 압박에 중국 시진핑 정부는 미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아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를 역공하고 있다. 최근 미 기업을 겨냥해 국가안보 등을 위협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팔지 못하도록 한 게 단적인 사례다.
더구나 이번 미국 측의 공세에 대해 중국은 오히려 자국 기업 대형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국가안보나 경제발전 등을 빌미로 외국계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국영기업에 미 컨설팅 기업과의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하면서 자체 컨설팅 기능을 강화하도록 했다.
특히 중국은 2008년 제정된 반독점법을 미국 등 외국기업들의 손발을 묶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22일 미 인터디지털은 중국 정부가 조사에 들어가자 중국 제조사와 계약한 기존 가격을 8,000만달러나 깎아줬다. 또 중국 정부는 지난해 세계 최대 원자재 거래업체인 글렌코어가 스위스 엑스트라타를 인수하자 각종 승인조건을 내세웠다. 결국 글렌코어는 지난달 중국 민메탈스에 페루 광산을 58억5,000만달러에 매각해야 했다. 중국은 지난해 740건의 합병을 심사해 중국 주스 업체인 후이안에 대한 코카콜라의 인수를 막았고 22건에 대해서는 각종 조건을 달아 승인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존 케리 국무부 장관과 루 장관에서 보낸 서한에서 "중국이 산업정책 목표를 위해 원칙도 없이 반독점법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미 기업이 좋은 조건에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면서 미 경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로이터는 "미 정부가 중국 군인을 기소한 뒤 중국이 외국기업에 대한 반독점법 적용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양국 간 갈등에도 전면적인 경제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직 낮은 상황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글로벌 경기에 타격을 입히고 양국 모두 상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당분간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미중 경제전략대화가 갈등해결의 일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회의에서도 절충에 실패할 경우 양국 간 대결양상은 11월까지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