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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10년간 네 번의 피비린내 나는 인종청소 전쟁을 일으켜 유고슬라비아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로 인해 22만 5,000명 이상이 죽었고, 수백만명의 피난민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발칸의 백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2006년 3월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엽기적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한때 유고슬라비의 성공한 권력자였다. 밀로셰비치와 같이 사악한 행각을 저지르면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했던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를 전쟁의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독재자 히틀러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중 한명인 일본 군국주의자 도조 히데키 등 역사속 인물로부터 1888년 영국 런던에서 15명의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 소아성애(小兒性愛)로 구속돼 죽음을 당한 미국의 사제 존 게오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사악함이 본성인 듯한 인간들이 도사리고 있다.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데 유독 왜 몇몇 사람들은 이런 행각을 저지르는 것일까. 바버라 오클리 미국 오클랜드 대학 공학부 교수는 그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았다.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사이코패스(psychopath)’들은 기분과 불안감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정조절이 어렵다는 것. 대뇌 깊숙이 숨어있는 ‘편도(amygdala)’의 감각이 무뎌 불안감과 공포감을 잘 느끼지 못하며 전두엽에 있는 ‘상전두이랑(superior frontal sulcus)’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여 도덕적인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게 종전의 연구의 성과다. 오클리 교수는 이를 근거로 사악함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저자는 나쁜 유전자를 지닌 기만적인 지도자의 원형으로 마키아벨리를 꼽고, 그가 쓴 ‘군주론’은 사악한 행동 습성의 유형을 설명하는 좋은 자료라고 말한다. 즉,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바로 마키아벨리주의적 인간들이라는 것. 특징은 이렇다. 사람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조작 대상이라고 간주하며, 전통적인 도덕관념이 희박하고 거짓말ㆍ속임수 등 기만행각을 예사로이 벌이며, 정신병리학적 결핍상태에 빠져있다. 또 이념적 말을 늘어놓기 바쁘며, 거시적인 목표실현 보다는 눈앞의 실리를 위한 책략에 더 관심이 있다. 그는 밀로셰비치도 골수 마키아벨리주의자라고 단정짓고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뇌과학ㆍ심리학ㆍ유전학ㆍ의료영상기술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면서 방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악마적 유전자의 증상과 행태를 이론적으로 풀어냈다. 또 밀로셰비치 등 역사적 인물과 친 언니인 캐롤린 등 주변인물을 사례로 들어 어려운 과학적 이론의 이해를 돕는다. 책은 그동안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관찰해온 과학자들의 연구 실적을 총 망라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사악함의 밑바닥을 파헤친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 이론에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사례를 곁들여 유전자에 숨겨진 사악함을 흥미진진하게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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