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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7월14일] <1447> 스코트의 쪽박


1698년 7월14일 에든버러 북부 라스항. 개척민 1,200여명을 태운 범선 5척이 항구를 떠났다. 목적지는 중남미 다리엔. 선단은 요즘의 파나마 지역인 이곳에 11월 초 도착했으나 도무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개척단의 목적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와 중계무역항 건설. 그들은 왜 311년 전에 파나마 운하 건설에 나섰을까.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다. 4년간 지속된 흉작으로 농업경제가 피폐해진데다 1603년부터 공동국왕을 모시고 있는 영국과의 격차도 날로 벌어졌다. 모든 고민을 한방에 해결할 운하건설의 난제는 돈. 잉글랜드은행 설립에도 참여했던 윌리엄 패터슨은 자본의 해외 조달과 은행권 발행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고안해냈다. 총비용 60만파운드 중 절반은 해외에서 조달할 예정이어서 다리엔 투자는 ‘프로젝트 자본 국제유동화’의 최초 사례로도 꼽힌다. 은행권 발행은 훗날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을 야기한 존 로도 그대로 써먹었다. 해외자본 조달은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런던 투자자들이 도중에 하차한 탓이다. 동인도회사의 독점권 상실을 우려한 영국이 견제에 나섰다는 소식은 애국심을 자극해 순식간에 40만파운드가 모였다. 국내 가용자금의 절반이 투입된 프로젝트의 결말은 쪽박. 파나마를 선점한 스페인의 압력과 황열병으로 두 차례의 개척단 2,500명 중 300여명만 살아서 돌아왔다. 결국 1700년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파산을 맞은 스코틀랜드의 선택은 영국과의 통합. 1707년 통합법 14조에는 스코틀랜드의 채무 39만8,085파운드를 영국이 변제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북방의 골칫거리를 끌어안아 브리튼왕국으로 재탄생한 영국은 세계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다리엔의 쪽박이 대영제국이라는 화학적 결합을 촉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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