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은 유가 상승을 막기 위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핵심 카드 중 하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당분간 유가 상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으로 하루 2,000만배럴의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중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최근 국제유가 상승의 충격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캐나다에 이어 가장 많은 석유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사들이는 석유는 하루 150만배럴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또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으로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에서의 영향력도 크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거부에 대해 “미국이 가까운 장래에 가격 하락을 이끌어낼 가망이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WSJ는 “공급 통제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러시아의 석유 감산과 에탄올과 같은 비화석연료 증산의 불확실성 등으로 수급 여건은 해가 갈수록 빠듯해질 것이라는 게 분석가들의 견해”라고 밝혔다. 좌절한 미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00만배럴을 증산하기 이전까지 14억달러 규모의 무기수출을 연기하거나 석유수출 국가들을 담합 혐의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법 등 석유 무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은 산유국이 아니라 오히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WSJ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수년간 생산량 감소를 가져왔고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을 높인 것이 유가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달러화 하락에 영향을 준 요인 중 하나인 미국의 금융위기와 미 행정부의 재정적자 증가 등도 부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자국 내 석유 채굴은 단단히 막아놓았으면서 오히려 외국 정부에 생산을 늘려달라고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앞뒤가 뒤집힌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와 관련, 부시 미 대통령은 17일 자국 내에서의 적극적인 유전 개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틀간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마치고 이날 이집트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의 증산만으로는 미국이 겪는 고유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고유가 문제는 국내 자원 탐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정제시설을 늘리는 한편 핵 에너지 생산을 장려하고 대체 에너지 증대 및 보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내에서 사우디에 증산을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하는 사람들이 국내 자원탐사와 핵 에너지 개발 및 정제능력 확충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견제해온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고유가 문제는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의 최고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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