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헌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프랑스의 와인 경매처럼 한국에서도 인삼주 경매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정헌배인삼주가를 운영하는 정헌배(57ㆍ사진)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11일 3년산 숙성 인삼주‘봉’을 개봉하며 “술의 물성적ㆍ감성적ㆍ사회적 가치와 아울러 투자가치도 조성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술의 세계화를 위해 인삼주의 표준화와 숙성법의 과학화를 연구해 2006년 문을 연 정헌배인삼주가는 발효ㆍ증류과정을 거쳐 3년 이상 숙성 후 개봉하는 ‘봉’의 주문제작과 아울러 막걸리ㆍ청주 등 비숙성주를 생산한다. 2008년 방송인 주병진씨를 비롯해 기업경영자 등이 주문한 1,000여개의 술독(9리터)이 이곳에서 3년을 묵었고, 이후 주문된 것까지 4,000여개의 옹기에 술이 숙성되고 있다.
술의 주문자가 아니면 개봉할 수 없는 이 인삼주는 지난 11일 한 주문자가 자랑삼아 친구들과 함께 3년전 담근 ‘봉’을 개봉하겠다며 찾아 온 것. 그는 “3년산‘봉’을 웃돈 얹어서라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이제 나오고 있다”며 “아직 양이 많지 않아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지만 술을 담근 주문자가 팔겠다면 경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교수가 3년 이상 숙성을 고집하는 이유는 국제적인 최소 공인 숙성기간이 3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삼주 하면 대부분 인삼에다 소주를 부어 놓은 것”이라며 “술 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라고 내 놓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곳에는 국내 한 보험회사가 서울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쓸 술을 미리 담아놓았는가 하면, 3년 후 부모님의 칠순잔치에 쓰겠다는 아들의 주문, 술 마니아들이 펀드형식으로 돈을 거둬 담근 술 등 주문자의 이름이 적힌 독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가득하다. 1997년부터 인삼주를 담아온 그는 1999년 국제 품평회와 2008년 프랑스 마스터 블렌더로부터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교수는 “한국의 특산품인 인삼 맛이 프랑스에서는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품격 그리고 가치는 올라갈 것”이라고 자부했다.
정교수는 후원자가 1,000명으로 늘어나면 주가의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현재 후원자가 600여명 정도인데 1,000여명의 후원자가 매년 1독씩 술을 주문하면 3년 후부터 생산량이 적정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대량생산은 아직 어렵지만 순수한 우리 농산물에 첨가물을 넣지 않고 술을 담아 세월과 자연이 숙성시켜주는 명품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술 연구에 빠진 건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며 ROTC로 입대하려 했으나 시력이 나빠 퇴짜를 맞고 좌절하던 그에게 당시 한 학기 학비의 3배 이상에 이르는 장학금 수여대상자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그는 “수출역군ㆍ사업보국 등이 청년들의 삶의 목표였던 1970년대 수출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던 끝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며 “물 맑고 산 좋은 우리나라에서 물은 좋은 수출 품목이고 물 중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바로 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30년째 술을 연구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인생의 목표를 세운 청년은 남들이 영어 공부를 할 때 ‘술의 나라’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며 불어학원을 다녔다. 1980년 파리9대학으로 떠난 정교수는 4년 만에 세계 명주의 특징을 연구분석한 논문으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돌아왔다. 그는 “세계 명주의 공통점은 ‘지역의 특화된 술’이다. 프랑스의 코냑, 미국의 버본 위스키, 일본의 사케, 중국의 마오타이 등은 지역 농산물과 효소가 만나 발효와 증류 그리고 숙성 과정을 거친 것”이라며 “엄선한 재료와 까다로운 공법 그리고 철저한 보관관리를 거친 술은 세월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진다. 특히 오크통에 보관하는 코냑과 마찬가지로 숨쉬는 옹기에 숙성하는 인삼주는 세월이 만들어 주는 명품”이라고 설명했다. 술맛을 위해 매일 저장고에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정교수는“코냑은 정기적으로 오크통을 돌려 술을 섞어주는데 음악의 파장으로 술을 섞는 효과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성에 주가를 세우기까지 정교수의 실험은 계속됐다. 학교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200여종의 국내 생산 쌀로 술을 담아 특징을 비교분석하고, 6년근 인삼 재배지를 물색하던 중 두가지가 맞아떨어지는 곳이 경기도 안성이었다. 누룩도 정교수가 직접 만든다. 그는 “인삼의 북방한계선인 안성은 쌀 맛이 좋고 뒷산인 비봉산의 약수도 유명해 인삼주 생산의 3박자를 고루 갖춘 곳”이라며 “안성에서 세계적 명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인삼주 생산에 이어 진도 특산품인 홍주의 규격화를 위해 특허까지 공개한 그는 “공법이 확실한 족보 있는 술을 만들어 적정 온도에서 묵혀야 그 가치가 대물림된다”며 “100년산 코냑이 있는 프랑스를 부러워할 게 아니라 이제 우리도 후대에 물려줄 명주를 생산하고 숙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