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골프매거진] '메이저 대회' 하면 이제 양용은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KPGA 투어 상금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배상문(23, 키움증권)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도 메이저 대회다. 지난 13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52회 코오롱-하나은행 한국오픈선수권대회에서 내셔널타이틀을 지키며 한국오픈 2연패, SK텔레콤오픈, 매경오픈 우승 등 투어에서 올린 6승 중 4승이 국내 메이저급 대회일 정도로 큰 대회에 강한 덕분이다. 그래서 그에게 붙인 별명이 '메이저 헌터'다. 야구를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이제 유명 골프선수가 됐다. 어떻게 된 우연인지 야구와 골프는 다르지만 같은 점도 상당히 많은 스포츠다. 골프는 클럽하우스에서 나와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오고, 야구는 홈을 떠나 다시 홈으로 돌아오기 위한 경기다. 집을 나섰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스코어와 1점을 향해서 전력투구한다. 그리고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집을 나서는 것이다. 배상문과의 인터뷰 약속을 1여년 만에 다시 잡던 날 떠올린 것은 '메이저 헌터'라는 별명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양용은이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거뒀다(이 인터뷰는 지난 8월20일에 이루어졌음). 만나는 이들마다 양용은의 메이저 대회 우승 소식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메이저 헌터라는 별명을 떠올린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별명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는 아직 인생의 2라운드를 좋은 성적으로 돌고 있는 중이다. 그 이후의 라운드에서는 1, 2라운드를 발판삼아 대한해협과 대서양을 건너 진정한 메이저 헌터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배상문은 국내 최고의 대회에서 또 다시 우승하며 메이저 헌터로서의 면모를 다시했다. -다음은 배상문과의 1문1답 ▲ 양용은이 우승한 PGA 챔피언십을 직접 봤나. = 그렇다. 생중계로 봤다. 아침에 일어나 TV를 트니 14번홀에서 플레이하고 있더라. 우승하는 순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 번쯤 본인이 저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 내가 메이저 대회의 우승자로 선택을 받고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곳은 노력을 해야 갈 수 있는 자리다. 메이저 대회 우승을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잘 되고 있다. 빠르면 2년 안에 미국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자신감이 많이 올라간 상태다. ▲ 올해 예선전을 거쳐 US오픈에도 참가했다. = 2타차로 컷탈락하기는 했지만 US오픈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없었다. 메이저 대회면 정말 별들의 전쟁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생각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도 언제나 완벽한 샷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미스샷이 있었다. 분명 다른 투어에 비해 선수층이 두텁지만 그 속에서도 잘하는 선수와 예상했던 것에 못 미치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든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내년에도 참가할 생각인가. = 그렇다. 예선은 다시 참가해도 또 붙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예선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US오픈 참가 자격을 가지고 바로 본선에 진출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 국내에서는 본인도 메이저 사냥꾼이다. 특히 지난해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거두며 내셔널타이틀도 획득했다. = 지난해 한국오픈에서는 퍼팅이 가장 좋았다. 특히 마지막 날 퍼팅은 감이 정말 좋았다. 위험한 고비가 올 때마다 순간순간 나를 가장 많이 따라줬다. 아무래도 우승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경기운영이 매 시합마다 좋아야 한다. 순간적인 판단력 하나만 흐트러져도 미끄러진다. (이번 한국오픈에서도 배상문은 위험한 고비에서 퍼트로 버디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 5승 중 3승이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면 변신이라도 하나. = 메이저 대회의 경우 코스가 상당히 까다롭다. 아무래도 매 타수마다 신중을 더 요한다. 그린 역시 상당히 까다롭다. 까다로운 만큼 더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라고 특별히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집중력이 더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코스가 내게 더 맞는 것 같다. ▲ 왜 자신에게 맞는 코스인가. = 매경오픈이 열린 남서울은 프로 데뷔 때부터 성적이 좋았던 코스다. 처음으로 톱10(6위)에 진입한 대회도 남서울에서 열린 매경오픈이었다. 그래서 매경오픈은 금방 우승할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웃음) 매경오픈이 열리는 남서울은 그린이 어려워 아이언 선택을 잘해야 한다. ▲ 4개 메이저 대회 중 3개를 우승했으니 남은 하나인 KPGA선수권대회만 우승하면 4개 대회를 모두 휩쓸게 된다. = 안타깝지만 KPGA선수권대회를 메이저 대회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시안 투어와 겸하는 대회들이 진정한 메이저 대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기준에 있는 메이저 대회는 모두 우승을 거뒀다. 국내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라면 초청선수만 있는 신한동해오픈과 크게 다를 것 없다. ▲ 이제 다시 한국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떻게 공략할 생각인가. = 핸디캡이 낮은, 아주 어려운 홀에서 타수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 샷의 감이 아무리 좋아도 너무 무리하지 않고, 또한 스코어가 어떻더라도 압박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파세이브를 할 것이다. (배상문은 1, 2라운드에서 드라이버샷이 좋지 않아 보기와 버디를 오갔지만 3, 4라운드에서는 파세이브와 버디를 잡으며 뛰어난 경기운영을 했다) ▲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걸걸함은 그대로지만 지난해 한국오픈 우승 후 1년이 지나는 사이에 실력과 분위기가 상당히 성숙해졌다. =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1년이라는 경력과 나이 한 살이 더 먹었으니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나. 또 확실히 경기를 보는 눈이 좋아졌다. 연습을 많이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바로 쇼트게임인데 이번 휴식기 동안 잡았다. 골프에서 고민거리 하나를 덜어내는 것은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자신감이 너무 붙었다. 걱정이 될 정도다. 하반기에는 코스에서의 여유가 더 생길 것 같다. ▲ 지난해부터 플레이를 할 때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비결은 뭔가. = 볼을 옛날만큼 강하게 때리지 않는다. 멀리 보내기 위해 무리하게 스윙하는 것이 아니라 볼을 몰고 다니기 위해서 노력한다. 드라이버샷도 어프로치샷을 하듯이 한다. 예전에는 잘 나가다가도 볼 하나가 코스 밖으로 뻥 나가버리면 바로 무너졌지만 이제는 실수가 나와도 기존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경기 흐름도 조금 알게 됐다. 어디서 더 조심해야 하는지, 어디서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도 플레이 흐름을 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 멘탈에 대한 상담을 따로 받은 건가. = 따로 받은 적은 없다. 그동안 쌓아온 실전경험 덕분이다. 한 번, 두 번 계속 실수를 하다보면 이를 통해서 현재의 나를 제어할 수 있다. ▲ 지난해 상금왕에 올랐지만 다승왕과 대상은 차지하지 못했다. = 대상포인트는 크게 욕심이 없다. 지난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상금왕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뤘다. 상당히 뿌듯했던 한 해였고, 목표를 이룬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지난해 차지하지 못했던 다승왕 타이틀은 올해 꼭 손에 쥐고 싶다. 또한 상금왕 2연패가 목표다. 그래서 하반기에 2승만 더 했으면 좋겠다. 또한 작년에 하지 못한 3승을 올해는 꼭 거두겠다. ▲ 요즘 골프에서의 주된 관심사는. = 미 PGA 투어 경기를 TV로 자주 시청하고 있다. 물론 일본 투어인 JGTO 경기도 신경 써서 챙겨 보고 있다. ▲ 5년 후 모습을 예상한다면. = 당연히 미국 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항상 꿈을 높은 곳에 잡았다. 5년 전에는 정규투어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그렸다. 우여곡절도 있어서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5년 후도 분명 그럴 것이다. ▲ 어린 시절에는 야구를 더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야구장에 매일 갈 정도였다.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 선수들을 선망했다. 그중에서도 승엽형이 가장 좋았다. 당시에 승엽형은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다. 배대웅 전 삼성라이온즈 코치의 소개를 받아 어릴 때 만났는데 초등학교에서 같이 야구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승엽형이 만류했다. 그래서 유병만 프로님 밑에서 최혜정, 조윤희와 같이 골프를 시작했다. 프로님은 원래 야구인 출신이지만 골프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잘 가르치는 분이다. 인성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고, 체력운동도 무지하게 많이 받았다. ▲ 골프에 빠지게 된 계기는 어떤 건가? =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력을 느꼈다. 그러다 야구가 좋아져서 갈등을 하다가 운동을 접고 학교만 다녔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 2때부터였다. 방학이었는데 하릴없이 놀고 있으니까 운동이 너무 하고 싶더라. 그리고 여러 운동 중에서 골프가 제일 좋았다. ▲ 내년 시즌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 일본에서 기량을 쌓아 탄탄히 한 다음에 미국에서 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늘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는 내 모습을 그렸는데 그것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 미국에 진출하게 되면 어머니와 동행하나. = 어머니는 미국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남들은 스무살이 넘어서도 마마보이처럼 엄마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남의 눈이다. 그리고 실제 나와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느 모자관계와는 다르다. 골프클럽을 쥘 때부터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캐디이자 기사, 어머니이자 코치, 여러 가지 역할을 다해주셨다. 어릴 때는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 이제는 홀로서기를 시작할 순간이 아닌가. = 홀로선다는 게 하루아침에 뚝딱되는 게 아니다. 어머니도 나이가 들면서 엄청 약해지셨다. 반면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약해진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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