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코스 리노베이션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는 곧 재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1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베어크리크의 베어코스에는 NH농협 KPGA선수권대회 연습라운드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베어크리크 직원들이 처음으로 개최하는 KPGA 투어 대회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그 시간에 하철상 코스관리부장은 베어코스가 아닌 크리크코스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가는 도중 흙을 잔뜩 실은 대형트럭들이 줄지어 코스를 빠져나와 지나쳤다. 크리크코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스타트하우스에 선 순간 맨땅으로 발가벗은 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코스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규모에 상당히 놀랐다. 현장에 동행한 김준영 전산 차장이 “300억원 규모의 공사”라고 귀띔했다. 300억원이면 신설코스를 조성할 수 있는 비용이다. 때마침 코스를 병풍처럼 둘러싼 운악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코스 리노베이션을 말할 때 흔히 성형에 비유한다. 기존의 코스 리노베이션이 코스관리의 편의성과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어서 큰 문제점을 가진 몇 개 홀을 고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몇몇 골프장들이 실시하고 있는 코스 리노베이션은 크리크코스처럼 18홀을 전면 수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번 겨울을 기점으로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9군데의 골프장 중 코스 전면을 리노베이션하는 곳은 6곳이다. 선두에 선 코스는 단연 베어크리크의 크리크코스다. 18홀 전체를 갈아엎어 완전히 새로운 코스로 거듭나 오는 6월 개장할 예정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연친화적인 형태는 유지하되 전략성과 아름다움을 부여했다. 크리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계류도 늘어났다. 김 차장은 “시작은 여느 골프장과 같은 개보수 개념이었지만 코스 설계사인 AM엔지니어링과 수많은 협의 끝에 현재의 대규모 공사가 확정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가평의 리츠칼튼 컨트리클럽도 마찬가지로 백지가 된 부지 위에 지형을 살리면서 새로운 코스 레이아웃을 입혔다. 그리고 ‘아난티클럽 서울’로 이름마저 바꿨다. 15억원을 투자한 자작나무숲은 아난티클럽 서울의 야심작이다. 페어웨이의 폭을 넓혔고 코스 길이도 1,554야드나 길어졌다. 1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벌써 두 번째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클럽 링크스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코스설계가인 로빈 넬슨이 기존 코스를 독특한 마운드와 잔디를 쌓아 직벽 벙커 턱을 만든 리베티드 벙커(Revetted Bunker)를 이용해 전략적이고 흥미롭게 뒤바꿨다.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컨트리클럽과 제주도의 제주 컨트리클럽도 18홀 탈바꿈 대열에 합류했다. 3년의 장기 공사에 들어간 강원도 춘천의 엘리시안 강촌은 전체 27홀 중 올해 공사를 마친 힐코스를 먼저 선보인다. 레이크사이드는 최대인 54홀 규모의 코스 리노베이션을 올해 착공할 예정이다. 사실 이미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골프장이 있다. 바로 몽베르다. 2007년 남코스 18홀을 다시 디자인해 티잉그라운드와 페어웨이를 교체하고 여성적인 코스로 거듭났다. 이 코스의 설계를 맡았던 노준택 AM엔지니어링 이사는 “수도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키운 발빠른 대응”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는 수도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월말 현재 운영 중인 전국 골프장은 대략 300여개에 달한다. 올해만 49개의 골프장이 개장할 예정이다. 새로운 코스들 중에는 뛰어난 코스설계와 시설로 벌써부터 골퍼들의 입소문을 타는 곳도 있다. 10년 후에는 전국 골프장의 수가 400여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된 골프장들이 점점 뒤처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골프인구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면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내장객이 붐비는 골프장과 한산한 골프장이 뚜렷이 구분되는 ‘내장객 쏠림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인근의 일부 골프장이 좋지 않은 코스에도 불구하고 내장객이 붐비는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이유는 접근성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원거리 골프장들은 골퍼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중 가장 확실한 방법이 골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코스로 서울 인근 골프장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송호골프디자인의 송호 대표는 “최근 코스들의 경향은 단조로운 공략에서 벗어나 다이내믹하면서도 미적인 부분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골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에 기존의 코스를 고수한다면 고객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살아남기 위해 다윈의 이론처럼 골프장들이 진화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송 대표는 “코스 리노베이션의 적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지금부터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장객이 몰리지 않는 골프장들이 무작정 코스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차별화다. 코스, 그린피, 서비스 등 골프장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보다 골퍼들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