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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기업의 또 다른 얼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보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된다. 경제학에서 각 경제주체의 이기적인 행동이 합쳐져 사회의 행복을 이룬다는 것이다.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활동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귀족들의 특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자유민주주의적·급진적 사고였지만 요즘은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이 잘 인용하는 말이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가장 기본적 경제주체인 기업이 이익을 최대로 발휘하려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재무제표를 만드는 일이다. 경영성과를 객관적으로 나타내고 공시해 낮은 이자의 은행대출은 물론 다수의 투자자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받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보고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기업의 회계부정이 밝혀질 때면 감사보고서와 실제 재무정보와의 차이, 외부감사인의 부실감사 여부를 먼저 묻는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만들고 이를 최종 결정한 해당 기업 경영자의 책임을 가장 나중에 찾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재무제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과 그 책임이 오롯이 기업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오히려 재무제표를 외부감사인이 만들어준다는 오해까지 낳고 있으니 안타깝다. 더욱이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을 외부감사인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은 물론 그런 서비스도 없으면서 왜 감사보수는 올려달라는지 불만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얼마 전 '외부감사인은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을 지원하거나 관여할 수 없다'는 명문화된 외감법 개정이 이뤄졌다. 사실 외부감사인의 재무제표 작성 지원 근절이라는 표현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부끄러운 표현이다. 기업이 재무제표를 스스로 작성하지 않고 외부감사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외국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 투자자·채권자 등 외부 이해관계자 입장에서 재무제표를 스스로 작성하지 못하는 기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기업은 재무제표를 스스로 작성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만약 재무제표를 스스로 작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원인을 면밀히 파악하고 개선해나가려는 것 자체가 기업의 기본적 관리활동이다. 기업의 이러한 노력은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회계기준원·금융감독원·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대한상공회의소가 주축이 돼 상장기업, 더 나아가 외감 대상 기업에 체계적인 회계교육 수행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적극적으로 교육하기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회계 투명성을 다시 한 번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재무제표를 스스로 잘 작성하고 자신들의 재무제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업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벤담은 기업이 가장 이기적인 욕망을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기업의 또 다른 얼굴인 재무제표도 그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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