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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 "꿈은 늙지 않는다"

최경주가 프레지던츠컵 트로피를 품고 있다. 구수한 사투리로 “이거 우리 것이여”라며 이번에야말로 미국을 이기겠다고 했다. /이호재기자

프레지던츠컵·리우올림픽 선수로 출전 목표

50대엔 챔피언스투어 개척 계획 “아내를 캐디로 모실 것”

2남 1녀 중 막내 강준 골프선수로 진로 확정 “아빠 기록 깨겠다”

“50대의 최경주요? 3주는 미국에서 투어를 뛰고 그다음 3주는 한국에 와서 자선재단 업무를 보겠죠. 비로소 골프를 즐기고 있을 거예요.”

한국 골프의 개척자 최경주(45·SK텔레콤)는 올해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 16년째다. 프로로 전향한 1994년부터 계산하면 22년째 프로골퍼로 살고 있다. 최근 국내 대회 출전을 위해 귀국한 최경주를 만났다. 호적상 1970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68년생인 그는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최경주도 요즘 부쩍 고단함을 토로할 때가 많다. “18홀에 두 번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샷이 나와요. 머리로 생각하는 거랑 다르게 임팩트 순간 헤드가 먼저 나온다는 거죠. 그런 두려움 속에서 공을 치고 있는 거예요. 10야드만 더 보낼 수 있으면 지금도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경주는 앞으로 2년 안에 승부를 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2년 동안은 우승에 도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카드(투어 출전권)야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카드 유지가 목표는 아니니까요.” 최경주가 굳이 2년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오는 10월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열릴 프레지던츠컵과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문이다. 최경주는 두 대회에 모두 선수로 출전하는 게 목표다. 야구의 박찬호는 39세, 축구의 박지성은 33세에 은퇴했지만 최경주는 은퇴 계획이 없다. 골프가 상대적으로 선수 생명이 긴 종목이기는 해도 최경주처럼 꾸준하기는 힘들다. 올해 악전고투 속에서도 PGA 투어 2개 대회에서 25위 안에 들었다. “50대면 막내가 대학 갈 시기겠네요. 그때면 PGA 챔피언스(시니어) 투어를 뛰어야죠. 거기 나간 한국 선수가 아직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영원한 개척자’로 필드를 지킬 모양이다.

◇역도 선수 시절부터 키워온 태극마크 꿈=최경주는 중학교 때까지 역도를 했다. 역도 국가대표가 꿈이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최경주는 국가대표를 꿈꾸고 있다. 이미 국가를 대표해 PGA 투어에서 8승을 거두며 상금으로만 300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상상은 언제나 그를 가슴 뛰게 한다. 올림픽 종목에 없던 골프는 112년 만인 내년에 리우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치러진다.

박세리는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2년 전부터 밝혀왔다. 최경주와 박세리가 남녀 대표팀 감독을 맡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전망됐다. 최경주는 그러나 “선수로 출전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이름값으로 밀어붙일 마음은 없다. “내년까지 최선을 다해 성적을 내서 선수로 가고 싶죠. 지금 세계랭킹이 100위 밖으로 처져 있지만 PGA 투어에서 준우승이나 3위를 하면 금방 80위권으로 뜁니다. 우승이 나오면 60위권까지도 올라갈 수 있고요.” 올림픽 출전은 개막 한 달 전인 내년 7월 세계랭킹이 좌우하는데 60위권이면 안정권이다. 그동안 강조해온 PGA 투어 10승과 마스터스 우승 목표는 올림픽이라는 꿈 때문에 더욱 간절해졌다. “10승과 마스터스 우승, 몸이 피곤해도 출전 대회 수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죠. 여건이 어렵더라도 그 안에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꿈은 변하지 않습니다. ”



◇프레지던츠컵 두 번째 우승은 한국에서=10월6~11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은 축구로 치면 월드컵이다. 225개국에 중계돼 10억 가구가 시청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장 갤러리만 12만명에 이를 것으로 조직위원회는 내다보고 있다. 조던 스피스, 버바 왓슨, 리키 파울러(이상 미국), 제이슨 데이, 애덤 스콧(이상 호주) 등 스타 선수들이 송도로 몰려온다. 타이거 우즈(미국)도 단장 추천으로 출전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연합팀의 수석 부단장인 최경주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겨야 한다”고 했다. 세계연합팀(유럽 제외)과 미국 대표팀의 남자프로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서 연합팀은 1승1무8패로 절대 열세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1998년 호주 대회에서 이기고 2003년 남아공 대회에서 비겼을 뿐이다. 연합팀은 라이더컵(미국-유럽 대항전) 등을 통해 꾸준히 손발을 맞춰온 미국보다 조직력 면에서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수석 부단장으로서 대회 운영과 선수 조합 등에 관여하는 최경주는 “단장 추천 선수를 각 팀 2명에서 4명으로 늘리자는 등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2003·2007·2011년 대회에 선수로 참가했다. 역시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네 번째 출전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랭킹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 선수 중에는 최근 유럽 투어에서 우승하며 세계 54위로 솟구친 안병훈의 출전이 유력하다.

최경주는 “그동안 남아공, 캐나다, 호주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나가봤는데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 분위기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본다. PGA 투어 대회장을 다니다 보면 선수들의 기대감이 크다는 것도 실감한다”며 “조직위는 역대 가장 인상 깊은 개·폐막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내에게 캐디 맡길 것=최경주는 몇 년 뒤 챔피언스 투어로 무대를 옮기겠다고 했다. 챔피언스 투어는 만 50세 이상 선수만 뛰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나 못 가는 곳이기도 하다. PGA 투어에서 낸 뚜렷한 성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통과해야 한다. 톰 왓슨, 프레드 커플스, 데이비스 러브 3세, 콜린 몽고메리, 베른하르트 랑거 등 ‘전설’들이 팔팔한 현역으로 챔피언스 투어를 누비고 있다. 대회별 우승 상금도 적게는 20만달러, 많게는 40만달러에 이른다. 인기로 쳐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밀리지 않을 정도다. 역대로 한국인 정식 멤버가 없었다는 것도 최경주의 마음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막내를 대학 보내놓으면 부부만 남잖아요. 챔피언스 투어에서는 아내를 캐디로 모실 겁니다. 거기는 캐디가 카트를 타도 되거든요.”

막내 강준이(12)이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더 밝아졌다. 지난해 말 골프 선수로 진로를 정했다고 한다. PGA 투어에 진출해서 아빠의 기록을 깨겠다는 선언과 함께였다. “골프장 가기 전날 바지랑 벨트, 셔츠에 모자까지 골라서 방에 쫙 깔아놓은 다음에야 자더라고요. 골프채도 닦아놓고요. 그런 걸 보면 기대가 되기도 하고…. 연령별 지역 대회에서 우승해서 큰 대회 초청장도 받았으니까요.” 2남 1녀 가운데 장남 호준이(18)도 골프를 꽤 잘 친다. 딸 신영이(14)는 플루트와 그림에 소질이 있다. 최경주재단 핵심 사업의 로고도 딸의 작품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골프 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다는 최경주는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다. PGA 투어를 주무대 삼은 아시아인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아직 없다. 여러 자격조건 가운데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포함한 메이저(급) 5개 대회 가운데 2승’을 최경주는 노리고 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이미 2011년 제패했지만 그게 마지막 우승이었다. 최경주는 “어떻게든 명예의 전당에 가겠다”고 했다. 그는 1999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에 초청선수로 나갔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줬던 잭 니클라우스의 미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아빠 같았다”고 기억하는 니클라우스는 최경주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다. 니클라우스는 46세이던 1986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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