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간 경제교류 채널이 사실상 단절됐다. 대화재개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본에 대한 중국의 기약 없는 외면이 지속되자 일본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대신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부터 이틀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일중경제협회 대표단의 방중일정이 이날 전격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대기업 대표들을 중심으로 170명의 대표단을 꾸렸던 경제협회는 중국 고위당국자들의 면담거부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1975년 이래 해마다 중국을 방문하며 양국 경제교류에 중요한 채널 역할을 해온 경제협회의 방중이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단을 대신해 도요타자동차 회장인 조 후지오 협회장과 요네쿠라 히로마사 게이단렌 회장이 베이징을 방문, 전 국무위원인 탕자쉬안 중일우호협회장 등과 만날 예정이지만 당국 고위층과의 개별면담 일정은 잡지 못해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앞서 23일에도 오는 27일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던 중일수교 40주년 기념식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민간 차원의 전시회나 상담ㆍ시찰계획 등도 줄줄이 보류되고 있다. 이날 양옌이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조리 등 당 간부의 일본 방문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중국은 당일 이들의 방일 일정 취소를 일본 측에 통보했다.
이처럼 중일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면서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FTA 협상이 연내 진전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본 정치권에서는 TPP 가입이 무역자유화를 위한 선택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일본 집권 민주당 내부에서 21일 당대표로 재선출된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이달 중 분위기 쇄신을 위해 개각을 단행하는 대로 TPP 교섭참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중일 3국은 5월 올해 안에 3국간 FTA 협상에 돌입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지난달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ㆍ호주ㆍ인도ㆍ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광역FTA 협상을 11월부터 개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이 독도와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ㆍ중국과 각각 분쟁에 휘말린데다 중일경제대화가 사실상 '올스톱'되자 일본이 기약 없는 한중일 FTA를 기다리기보다 우선 TPP 교섭에 참가해 부진한 무역자유화에 시동을 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노다 총리는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구조적인 내수침체를 돌파하려 TPP 참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원칙으로 하는 TPP에 대한 반대여론에 부딪쳐 교섭참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최근에는 한중일 3국과 연계한 FTA에 치중해왔다.
노다 정권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진 점도 일본 정부가 서둘러 TPP 교섭참가를 선언할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 민주당 소속의 기라 슈지 의원은 조기총선이 실시되면 TPP에 보다 신중한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은 민주당 정권에서 TPP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이 주도하는 TPP 교섭참가는 시종일관 일본을 압박하는 중국의 태도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경제통합 논의를 주도하려는 중국으로서는 일본의 TPP 참여가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을 달래기 위해 경제협력 재개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노다 총리는 이날자로 게재된 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외국의 투자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며 "중일 간 교류를 훼손하는 것은 두 나라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해 중국의 "이성적인 판단"을 촉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