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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었던 영화감독 신상옥씨가 지난 11일 오후11시39분에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신 감독은 2년 전 간이식 수술을 받은 뒤 통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건강이 악화돼 보름 전부터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날 타계했다. 1926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한 신 감독은 45년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고려영화협회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뒤 52년 영화 ‘악야(惡夜)’로 영화감독으로서 발을 내디뎠다. 53년 당시 톱스타였던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결혼하는가 하면 78년엔 홍콩에서 납북된 뒤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86년 3월 북한을 탈출하는 등 극적인 일생을 살기도 했다. 61년 감독한 ‘성춘향’이 당시로는 기록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고 그 해 만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성춘향’ ‘상록수’ ‘연산군’ ‘빨간마후라’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2002년 신구가 치매노인 역 주연을 맡았던 영화 ‘겨울 이야기’가 유작이지만 미개봉작으로 아직 일반에 소개되지 않았다. 신 감독의 영화계 활동사는 그가 설립한 영화사 신필름과 함께한다. 부인 최은희씨를 비롯해 신영균ㆍ남궁원ㆍ신성일 등 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배우 대부분이 신필름에서 활약했다. 78년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납북 사건은 영화계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78년 1월 최은희씨가 먼저 납북된 데 이어 같은 해 8월 신 감독까지 북으로 잡혀간 것이다. 신-최 부부는 북한에서도 신필름이란 영화사를 만들어 ‘탈출기’ ‘소금’ ‘심청전’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다수의 북한 영화 기획자로도 참여했다. 빈소를 지키고 있는 최은희씨는 “어제 중환자실로 옮길 때까지도 말씀을 하셔서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며 “담배ㆍ술을 안하고 특별한 취미도 없이 오로지 영화만 알던 분”이라고 남편을 회상했다. 최씨는 이어 “남편이지만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존경했다”며 “이제 여행도 다니며 여생을 즐기자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떠나 가슴이 아프다”며 오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씨와 정균(영화감독), 상균(미국 거주), 명희, 승리씨 등 2남2녀. 영결식은 범영화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발인은 15일 오전9시30분. 장지는 경기도 안성천주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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